우주선은 뜨겁게 소용돌이치는 안개 속에서 불가사의한 괴물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 거대한 물체는 조용히 누워서 적막한 해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서쪽에는 끝없는 안개 사이로 어렴풋이 회색의 쓰레기 더미처럼 보이는 거대한 바다가 보였다. 이는 금성의 모든 바다 중에서 가장 넓은 곳이었다. 태양의 영향으로 조류가 밀려들었고, 해변으로 밀려드는 파도의 흐름은 머리를 낮추고 달려드는 황소와 같았다.
두 사람이 자석 장화를 신고 희미하게 빛나는 외피를 기어오르고 있었다. 양쪽 다 멸균 헬멧을 쓰고 작업하면서 중앙에서 가장자리로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선두 인솔자는 열선총을 들고 그 광선이 넓게 흩어지도록 발산시키고 있었다. 표면에 점점이 박혀있는 누리끼리한 추한 반점이 보일 때마다, 빛을 쬐었고 그것이 사라지면 이동했다. 토미 스트라이크는 우주선의 지휘 계통에서 가장 높은 직함 중 하나인 부함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습관대로 승무원 중 가장 낮은 직급이 하는 일인 기계 보수 같은 일을 하곤 했다.
“인정할게.” 스트라이크는 그와 함께 오랜 시간을 고생해온 동료에게 투덜댔다. “난 아무리 해도 원심추진 장치를 다루는 법을 모르겠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리는 날 부함장으로 삼았지. 그러니 그것을 배우는 게 내 의무야. 하지만 내가 조종실에 들어갈 때마다 그녀는 날 밀어낸단 말이지. 내가 부엌에 들어온 남자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지, 천재가 하는 일을 방해한다고!”
“예, 그렇습니다.” 부조종사 배로우는 주의 깊게 스트라이크의 무기가 일으킨 바람으로 지워진 반점을 검사했다. 구멍의 흔적을 찾으려는 것이다. 뭐든 찾아내기만 하면 액체 금속 스프레이를 뿌려 손상 부위를 빠르게 복원할 것이다. “예, 그렇습니다. 제 생각에는 계절풍이 잦아든 것 같군요.”
“자네 생각에도 그녀가 날 겨우 사냥 무리의 대장 노릇이나 삼으려는 것 같지. 내가 이 행성의 누구보다도 그 일에 빌어먹게 능숙하다는 것을 알아. 하지만 아냐. 함장이라면 우주선에 남아있어야 해. 그런데 게리 칼라일은 항상 사냥의 선봉에 서지! 내 명령을 철회하고 말야. 그럼 난 한가롭게 손가락이나 빨고 있어야 한다고. 어떤 녀석들은 애기 노릇하는 게 뭐 어떠냐고 생각하겠지만 난 여자랑 결혼하고 싶다고. 치마폭에 싸인 무리가 되고 싶지 않아!”
“예, 그렇죠. 다들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배로우는 필사적으로 화제를 바꾸려했다.
“내 말은 난 준비가 되었다는 거야. 배로우. 저항할 준비가!” 스트라이크는 총을 흔들며 멜로드라마라도 되는 듯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 멋진 익살의 이면에는 진지한 경고가 숨어있었다.
“그렇죠.” 배로우는 아직도 노력하고 있었다. “이 박테리아 군집은 엄청난걸요. 이 위도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보입니다.”
그가 가리킨 세균 무리는 항행용 날개 부분과 방주의 명판 오른쪽을 뒤덮고 있었다. 더러운 점액질 덩어리였다. 스트라이크가 강하게 빛을 쏘아댔다.
“놀라울 것도 없어. 저 세균들 지구로 돌아가면 정말 배로 빨리 자라거든. 엄청난 적응력을 가지고 있지. 움직일 수도 있고. 산과 해로운 독소를 방출하지. 조금 놀라운 건 이 거인 박테리아가 조금만 환경이 좋아지면 저 꼴이 된다는 거야.” 그는 안개 속으로 열선을 내뿜어 쉿쉿 소리가 나게 했다. “그럼 저것들은 계절풍을 타고 돌아다니며 손이 닿는 주변의 모든 것들을 파멸시키지. 금성표면에서는 감염 속도가 끔찍할 만큼 빨라.”
이내 주변의 대기를 습격하던 세균과 곰팡이의 포자는 제거되고, 우주선은 금방 깨끗해졌다. 두 사람은 뒤뚱거리며 지면으로 기어 내려와서 개항장으로 향했다. 그것은 정신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과도 같았다. 우주선 후반부의 절반 정도가 신기한 생명체를 수송하기 쉽게 수없이 많은 구획으로 나뉘어 있었고 거기에 있는 전시물들이 끔찍한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깩깩거리고 신음하고 쉿쉿 거리고 울부짖는 상상 가능한 모든 동물의 광포한 소리가 고막을 강타하고 있었다. “저들을 생포하기”위해. 칼라일은 금성 북반구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을 들린 잠깐 동안 지극히 성공적인 시간을 보냈다.
사냥 분대는 거의 매시간 괄목할 만한 표본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것들은 대양 곳곳을 민첩하게 누비고 다니던 놀랄만한 대양의 게라든지 바다 다람쥐, 바다 썰매 같은 발을 지닌 작은 설치류들이었다. 어떤 것은 기름기가 너무 많아서 눈을 끄집어내거나 입을 벌릴 때 마다 그게 밖으로 튀었다.
심지어 희귀종으로 유명한 볼라스 새까지 잡았는데. 그 새는 금성에 사는 각양각색의 생물 중에 유일하게 날 수 있는 것으로 적외선에 감응하는 눈을 가지고 있어 안개 속을 뚫고 다녔다. 그 새는 3단의 골격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그 몸에는 단단한 연골조직이 매달려있었다. 그것을 고대 아르헨티나 인들의 볼라스처럼 사냥감을 꿰어내는 무기로 사용하곤 했다. 볼라스 버드에게 최악의 적은 자신이었다. 종종 흥분해서 추적하다가 스스로 목이 졸리곤 했다.
스트라이크는 헬멧을 벗어 던지고 시끄러운 소리에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뱃머리의 해도실을 향해 중앙 통로로 걸어 나갔다. 거기서 그는 불완전한 지도와 빛바랜 기록들을 샅샅이 훑어보고 있는 게리 칼라일을 만났다. 그 엄청난 젊은 여성의 모습을 마주할 때면 언제나 그녀의 눈에 띄는 미모 덕분에 말문이 막히곤 했다. 그는 친숙한 옆모습의 곡선이라든지 고집 센 턱, 실크로 만든 걸레처럼 헝클어진 금발 머리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내 그의 존재를 알아차린 그녀가 돌아섰다.
“안녕, 토미.”
“안녕, 게리.” 그들은 서로에게 웃어주었다. 그들은 단 둘이 있는 순간에도 방어태세를 완전히 풀지 않았다. “여기를 뜰 준비는요? 이번에는 멋진 수확물을 얻었어요.”
“맙소사!” 토미는 역겨움을 담아서 말했다. “당신이 저것들을 받았다고 해서 꼭 먹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어째서…”
“에너진의 사람들이 대가로 두꺼운 수표책을 줬거든요. 난 신의를 지키는 고용인이거든요. 게다가 썩 나쁘지도 않아요. ‘활기를 찾으려면 에너진을 먹으세요!’” 그녀는 웃었다. “ 내가 말했듯이, 어쨌든 간에 여기서 우리 사냥을 마치려해요. 그러니 떠날 준비를 마치고 나면 잃어버린 대륙을 찾아가자고요.”
스트라이크의 눈이 빛났다. 금성의 잃어버린 대륙, 신화, 전설, 2류 작가들의 낭만적인 소품에 나온 지도 쪼가리에서 기인한 것으로 그 항해일지에는 해도 예닐곱 줄 정도가 적혀있었다. 시드니 머리. 행성 탐험가 중 가장 위대한 남자. 그 남자가 서둘러 그려 넣은 금성의 지도에는 아리송한 몇 개의 선이 있었다. 거대한 바다 내부에 있는 대륙 혹은 큰 섬이었다. 일지에 적힌 여섯 문장에 따르면 행성을 떠나느라 지도에 없는 지역은 빠르게 지나쳐갔다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로 분명히 지구인 중에 그 미지의 땅을 보고 돌아왔다고 말한 이는 없었다.
“알고 있겠지만.” 게리는 생각에 잠겼다. “머리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이 신비의 대륙 내지는 섬을 본 일이 없다는 건 이상해요. 다른 사람들도 찾으려 했다고요. 사실은 그 대륙을 찾아낸 누군가는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는 거겠죠. 기묘한 점은…”
스트라이크는 갖고 있던 불만거리를 떠올렸다.
“그러니까, 그건 거기 가게 되면 더 잘 알 수 있겠죠. 생각해봐야 소용없어요. 하지만 보게 된다면 말입니다. 게리. 나는 그때 생각할 거예요.”
“좀, 들어요!”
“분명한 것은 우리가 성공적인 원정을 다녔다는 겁니다. 아직 주인이 없는 빈방이 많이 남아있지요. 그래서 난 궁금해졌어요.”
“그래서요?”
“그러니까, 이 근처는 거의 다 쓸었어요. 따라서 내 생각엔 표본 몇 개를 더 잡아들인다 해도 문제 삼을 사람은 없단 말입니다. 잡은 것들만 가지고 지구로 돌아가도 꽤 많은 돈을 벌어들이겠지요. 아마도 결혼증서를 사서 결혼하기에 충분할 만큼은 될 겁니다.” 그것은 가정의 평화당(일명 D.T.)이 집권하는 짧은 기간 동안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상정한 것이다. 그 공약의 기본은 결합하려는 예비 신랑과 신부가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데 실패한 경우 각자에게 추징금을 부과하는 것이었다.
게리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행성 밖에서 가져온 이런 것에는 보통 최고가가 붙어요.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꽤 높은 가격이죠. 그런 것들을 공급해줄 수 있는 곳이 그리 많지는 않거든요. 게다가 지구상에 금성의 생물을 구비하고 있는 박물관은 대여섯 개도 안 돼요. 나와 거래하는 사람들 밑에 가격경쟁을 하는 다른 사냥꾼들이 있다는 건 생각 안 해봤죠?”
“이런, 그렇군요. 게리! 사실상 나는 그것들을 영화사에 파는 줄 알았어요. 나인 플래닛 픽쳐스 같은….” 스트라이크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게리의 매끈한 흰 턱이 별안간 굳어졌다. 게다가 눈에서는 촛불에 집어넣은 소금처럼 분노의 불꽃이 일어났다.
“그 모조품들이요?” 그녀는 외쳤다. “난 절대 아니에요. 그런 것들은 내게 절대로 금지된 것들이라고요. 토미! 영화라니! 왜죠, 모든 것들이 순전히 가짜라고요! 종이죽으로 세트를 만들고 소리를 더빙해서 필름에 입힌게 영화에요. 절반크기의 가벼운 우주선 모형으로 행성간 이동을 표현하죠. 그런데 내가 애써 잡은 목성이나 금성의 괴물들을 그 사람들이 좋아하는 싸구려 멜로드라마 만드는 데 쓰게 하라니요.
그자들이 뭘 하는지 아나요? 그자들은 웃돈을 주고 생화학자를 고용하기 바쁘지요. 그런 다음에 더 이상 생명도 혼도 없는 로봇을 만드는 거예요. 단추만 누르면 여주인공을 강타하죠. 또 다른 단추를 누르면 악당들을 먹어 치워요. 게다가 나인 플래닛 픽쳐스는 어마어마한 뻔뻔함을 가지고 공공연하게 이것들이 진짜라고 속이고 있어요! 이건 사기에요. 토미! 옳지 않다고요! 그들은 사기꾼이라고요!”
“거 참 엄청난 사기꾼들이군요” 스트라이크가 작게 우물대는 바람에 게리는 듣지 못했다. 어느새 나타난 배로우가 주변을 걱정스럽게 맴돌고 있었다. 싸움을 말리고 평화를 지킴으로 해도실 전반에 훌륭한 동료애가 넘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게리의 혀는 움직이는 걸 즐겼고, 그녀의 분노는 지배체계에 활기를 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전문성에 대한 것이나 희귀 생물체의 거래에 관해 거슬리는 의견은 언제나 개인적인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이 귀찮은 잃어버린 대륙을 찾으려는 가장 큰 이유는 나인 플래닛 픽쳐스에서 만든 영화에 ‘잃어버린 대륙’이라는 이름이 붙었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일주일 전 런던을 뜰 때, 야비한 폰 소른이 내 업무 관리자 주변을 어정거리고 있었어요. 내가 잃어버린 대륙에서 어떤 동물을 데려올지 알고 싶어서였죠.
그자는 그게 스스로를 얼마나 바보 같아 보이게 하는지 알고 있어요. 그래서 내게 제안을 하더군요. ‘친애하는 칼라일양’.” 게리의 흉내는 꽤 그럴듯했다. “'만약에 당신이 에, 나인 플래닛에 확실히 엄, 방문해주기만 한다면 다가오는 원정에서 아, 우리에겐 영광이 될 겁니다. 얼마나 장관일지 알겠죠? 그, 어, 장소는 프로먼의 화성 극장 로비에서 밤에 시사회가 열립니다.' 그 작자는 그렇게 하면 런던 행성 동물원과 맺은 계약을 깨뜨리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어요. 내가 그자에게 뭐라고 했는지 상상해 봐요.”
“그래요. 상상이 됩니다.” 스트라이크는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배로우는 떨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뭔가 흥미로운 것을 찾아낸다면, 본 소른은 영화를 개봉할 때에 맞춰서 수정을 가하겠다는 거죠. 오, 안돼요. 토미. 영화를 위해선 어떤 표본도 넘겨줄 수 없어요. 말도 안돼요!”
토미 스트라이크는 게리의 거만한 태도가 어디서 나오는지 알고 항상 받아주었다. 냉랭하고 말 붙이기 어려운 모습은 승무원들의 존경과 완벽한 충성심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허나 때때로 그녀의 행동은 지나치게 진짜 같았다. 이번에는 너무 심하게 쏘아대는 통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는 평온하게 미소 지었다.
“그래서 대장은 영화를 싫어해요.”
“바로 그거에요. 게다가 모든 부하들은 정해진 일을 하느라 바쁘다고요. 토미.”
“내가 돈이 되는 짐승을 잡게 된다면,” 그가 부드럽게 주장했다. “나도 여기서는 생초보가 아니게 되는 거겠죠. 알고 있겠지만 나도 능력이 있어요.”
게리는 신음소리를 냈다. “오, 토미. 훈련의 중요성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건가요? 얼마나 많이 눈치를 줬는데 알아채지 못했나요? 뭐든 알아차린 게 없나요?”
스트라이크는 귀찮게 두리번거리지 않았다. 그는 그 상징이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우주선을 지배하고 있는 규칙이 가혹해보일지라도, 그것은 수년간의 경험에 의해 구성된 거라고요. 경제적 이익과 인간의 안전을 최대한 보장하도록 고안된 거죠.”
게리도 유약함이란 다음절어를 가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내보이는 것은 부끄러워했지만.
우리는 위험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어요. 단합에 실패하게 되면 분명 동료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게 되고 재앙을 초래하게 되요.
칼라일리즘은 우주선 전체의 전략적 요충지를 배치하는 것과 닮아있었다. 통제실, 승무원의 방, 심지어 세면실까지도, 엄격한 복종을 요구하도록 섬세하게 설계되었으며 게리 칼라일 개인의 인성은 모두 완벽하게 수면아래 가라앉아있었다. 스트라이크는 그것을 항상 느끼고 있었다. 저들이 일이 매끄럽게 진행되는 것과 탐사대가 낯선 행성에 내렸을 때 사고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을 본질적으로 중시하고 있다는 것을. 토미 스트라이크의 방식은 전혀 사용해본 일이 없을 것이다. 그의 지식은 금성의 무역업자가 알 수 있는 금성에서만 통하는 것들이었다.
허나 지금 게리는 그를 완충된 배터리 같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깐 동안 그녀가 뒤집어쓴 효율 만능에 사무적 딱딱함을 가장한 맞지 않는 껍질을 벗어버리고, 부드럽고 다정한 매력적인 모습으로 돌아왔다.
“토미.” 그녀가 속삭였다. “이 규칙이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모르겠어요? 만약에 당신이 혼자 떠나서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 나는 어쩌죠?”
스트라이크는 내부에 있는 마개가 빠지기라도 한 듯 반항심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좋아요. 게리.” 그가 말했다. “당신이 이겼습니다.”
그러나 스트라이크의 방에는 폰 소른과 싸인한 계약서가 있었다. 스트라이크가 잃어버린 대륙에서 가져오는 것이 어떤 것이든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 준다는 것이었다. 게리냐 게리가 아니냐,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였다. 돈은 그가 여자와 결혼하려 할 때 돈을 목적으로 결혼하려 한다는 오명을 벗겨줄 것이다.
그는 신중하게 배로우를 살폈다.
항상 그 부조종사가 유약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유인책을 쓰더라도 그를 게리의 곁에서 떼어놓을 가능성은 없었다. 그는 기습공격을 결심했다.
“어때?” 배로우의 주위를 빙글 빙글 돌았다. “나랑 함께 하겠나, 아님 반대할 텐가?”
배로우는 숨이 막혔다. “죄송하지만 저는 무슨 말인지….”
“자네도 내말이 무슨 의미인지 빌어먹게 잘 알고 있어. 나는 게리가 찾기 전에 잃어버린 대륙에 도전할 거야. 찾기만 한다면 우린 돈방석에 앉을 걸.”
배로우는 망설였지만 3분도 되지 않아서 격렬한 논쟁 끝에 넘어가고 말았다. 금속 통로 아래 쪽을 흘끗 보니 그는 투덜대고 있었다. “완전한 규칙위반입니다. 그러니까 대장이 내게 명령하기를….”
“그렇지! 명령이고말고. 장비를 챙기고 광선을 조정하게. 해변에서 비행기를 탈거야. 재빠르게.”
배로우는 순간적으로 양심이 찔리는 것을 느꼈다.
“칼라일 양이 당신이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지적하면 어쩔 거죠?”
스트라이크의 얼굴에 기름이라도 바른 듯 기쁜 표정이 피어올랐다.
“걱정 마. 배로우. 너무 성급하게 말했다는 것을 알아차릴 거야. 그녀는 날 용서하겠지.” 그는 사랑에 빠진 젊은 남자처럼 믿기 어려울 정도의 자신감을 가지고 선언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날 사랑하거든.”
누군가 내게 여송연을 청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고 대화는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담배연기가 두터운 장막을 이루고 와인에 취한 두 사람의 머리는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이미 상황은 그렇게 굳어진 것으로 보였다. 누군가가 뭔가 해서 우리의 침체된 영혼을 일깨우지 않은 이상은 그랬다. 그런 만남은 이내 자연스럽게 끝이 났다. 그리고 손님들의 대부분이 신속하게 집으로 돌아가서 잠자리에 들었다. 그 대부분이 깊이 잠들었다. 그 누구도 눈에 띌만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주목할 만한 이야기를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존은 요크셔로 떠났던 사냥 여행에서 겪은 독특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보스턴의 톰킨스 씨는 자신의 작업철학을 긴 시간을 들여 상세히 설명했다. 꼼꼼하게 유지 관리해온 애치슨, 토피카, 산타페의 철도에 대한 것, 그것의 확장과 각부문에 미치는 영향력의 증가, 살아있는 가축들이 굶어죽기 전에 배달한다든지 하는 일 뿐 아니라 인간의 일상을 파괴시키는 일 없이 옮기는 것이 정말로 가능하다는 허황된 꿈을 안고 표를 사는 승객들을 운송하는 일을 수년간 성공적으로 처리했다는 것에 대해서. 시뇨르 톰볼라는 반대자가 없다면 말썽거리가 생기지 않는다고 논쟁하고 있는 우리를 설득하려 애쓰고 있었다. 통합이라는 것은 그의 나라에서 늘상 근대식 어뢰와 같은 효력을 보여줬으며 조심스럽게 고안되어, 유럽을 거대한 병참기지로 만들었다. 그것이 완성 되었을 때 의지가 약한 지도자가 사는 지역은 필연적으로 붕괴하고, 보지도 두려워하지도 듣지도 않는 그칠 줄 모르는 정치적 혼란에 처하게 될 운명이라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더 자세히 설명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그 대화는 프로메테우스가 바위위에서 간을 쪼아 먹히는 것이나 탄탈로스의 물이 흩어지는 것, 올렌도르프 경의 교훈적인 글에 서 평안을 찾기를 강요당한 익시온의 처지와 비교할 때 우리 대화를 듣는 것이 더 지독한 일이었다. 우리는 탁자에 여러 시간을 앉아있었다. 지겨웠고 피곤했으나 누구도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여송연을 주문했다. 우리는 부지중에 말한 사람을 쳐다보았다. 브리즈번은 서른 다섯살로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데 타고난 재능을 지닌 남자였다. 그는 강건한 남성이었다. 그 겉모습 만 봐도 범인의 상식을 뛰어 넘는 평균 이상의 크기였다. 그의 키는 6피트가 훨씬 넘었다. 살찐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마른 편이라 할 수도 없었다. 그의 작은 머리는 강건하고 근육이 잘 발달한 목이 지탱하고 있었다. 그 넓고 탄탄한 손은 호두까기 없이 호두를 부수는 독특한 기술도 가지고 있었다. 그를 보게되면 보통을 넘는 소매 넓이와 두터운 가슴에 놀라지 않기는 어려웠다. 그는 별것 아닌 이야기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재주가 있었다. 다시 말해서 그는 겉보기에도 강해보였지만 실제로는 보기보다 훨씬 더 강한 사람이었다. 그 모습을 묘사하는 데는 긴말이 필요 없었다. 밝은 색 머리털, 푸른 눈, 큰 코 밑에는 콧수염이 조금 나있었고 사각턱이었다. 브리즈번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따라서 그가 여송연을 요청했을 때 모두가 그를 주목했다.
"그것 참 이상한 일이군요." 브리즈번이 말했다.
모두가 말을 멈췄다. 브리즈번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기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어서 칼로 자른 것처럼 사람들의 이야기를 꿰뚫고 들어왔다. 모두가 듣고 있었다. 브리즈번은 그가 청중의 주목을 끌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매우 침착하게 여송연에 불을 붙였다.
"이것 참 독특한 이야기지요." 그가 반복했다. “그건 유령에 관한 이야깁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유령의 목격담을 묻기를 즐기죠. 제가 본 적 있습니다.”
“허튼소리! 당신이? 뭔 말을 하는지 알고나 하는 말이요, 브리즈번? 어쨌든 지성인 아니요!”
다들 감탄사를 내뱉으며 브리즈번의 주목할 만한 발언을 반겼다. 모두가 짤막해진 여송연를 주문하기 위해 지배인을 호출했다. 갑자기 어딘지 모를 깊숙한 곳에서 신선한 드라이 샴페인 병이 나타났다. 상황은 정리되고, 브리즈번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노련한 선원이었습니다. 브리즈번이 말했다. 종종 대서양을 건너건 했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었죠. 누구나 가장 좋아하는 것이 있어요. 전에 브로드웨이의 바에서 몇 시간이고 자신이 아끼는 특별한 자동차를 기다리며 죽치고 앉았는 사람을 본 일이 있지요. 술집 주인장의 인생의 최소 3분의 1정도는 손님들이 좋아하는 것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내게는 목적지가 정해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오리 연못을 건너다니곤 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성급한 결론일지도 모르지만 일생에 딱한 번을 제외하면 행복한 여행을 해왔죠. 그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때는 유월의 더운 아침이었죠. 그 사람은 세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검역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증기선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습니다. 기묘하게 몽롱하고 생각이 많아 보이는 사람이었죠. 나는 짐이 거의 없었, 아니 가지고 다니질 않았죠. 무리를 지은 여행자, 짐꾼, 습한 증기선의 갑판에 툭 튀어나온 버섯처럼 청동 단추를 단 푸른 코트를 입고서 주제넘게 홀로 여행하는 승객들에게 불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드는 무리들과 어울렸습니다. 종종 눈에 확 띄는 흥미로운 무리들과 친분을 쌓곤 했죠. 당신네들이 도착했을 때 그들은 없을 겁니다. 5분쯤 지나자 도선사가 ‘어서 가시오!’하고 소리치자, 마침내 청동 단추에 푸른코트를 입은 무리들은 데비 존스의 궤짝에 집어넣는다는 전설 이야기처럼 갑판과 통로에서 완벽하게 사라져버렸지요. 하지만 그때부터 시작이지요. 깨끗하게 면도하고, 푸른 코트를 입고 게걸스럽게 보수를 받아 챙깁니다. 나는 서둘러 탑승했습니다. 캄차카 호는 내가 좋아하는 배 중 하나였지요. 내가 본 것 중에 그만한 배는 없었거든요. 그 어떠한 유혹이 오더라도 다시 그 배를 타고 항해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요. 당신네들이 무슨 말을 할지 압니다. 그 배는 드물게 깔끔한 고물을 가지고 있었고 이물의 가파른 경사는 배를 항상 보송보송하게 유지해줬죠. 게다가 침실 아랫단은 대부분 더블 사이즈였습니다. 여러 가지로 뛰어낸 배죠. 하지만 다시는 그 배를 타고 항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옆길로 샌 것에 대해 용서를 청하겠습니다. 나는 배에 탔고 선원을 불렀습니다. 붉은 코에 더 붉은 구레나룻을 단 서로 잘 아는 선원이었죠.
"105호 선실 아랫단." 도심지의 델모니코에서 위스키 칵테일을 시켜먹고 대서양을 건너려는 특이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사무적인 목소리로 내가 말했어요.
그 선원은 여행가방, 두꺼운 코트, 발판 등을 날라다주었습니다. 그자의 얼굴에서 받은 인상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겁니다. 핏기가 싹 가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가장 뛰어난 신이 일으킨 기적이라 할지라도 자연법칙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단호하게 말하는데 그 사람의 혈색은 멀쩡했습니다. 하지만 행동이 보여주고 있었지요. 그자가 눈물을 찔끔거리며 콜록거리더니만 내 여행 가방을 떨구고 가버렸거든요. 거기에는 오랜 친구인 스닉슨 반 피킨이 항해를 위해 선물한 오래 묵은 고급품 셰리주가 두병 들어 있었기에, 내 신경은 극도로 날카로워졌습니다. 하지만 그 선원은 그런 건 몰랐겠죠.
“어, 그러니까 나는 나는!” 낮은 목소리로 그러더니만 그대로 앞장서 가버립니다.
내 생각이지만 나를 아래층으로 인도하는 헤르메스는 독한 술을 좀 걸친 듯 했어요. 그러나 나는 말없이 그를 따라갔지요. 105호실은 좌현, 적당한 후미 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특별할 것이 없는 객실이었습니다. 캄차카의 아랫단 침대는 더블사이즈입니다. 큰 방이었습니다. 보통 쓰는 세면대가 있었고,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느낌이 나도록 화려하게 꾸몄지요. 보통은 쓸 일이 없는 갈색 목재선반도 있었죠. 큰 사이즈의 우산을 걸기보단 보통 하는 칫솔장사에게나 어울리는 물품이었죠. 멋없는 매트리스위에는 세심하게 개켜놓은 담요가 놓여 있었는데 위대한 현대의 유머작가가 본다면 차게 식은 메밀 팬케이크와 꼭 같다고 했겠죠. 수건에 대한 문제는 전적으로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유리제 디캔터에는 옅은 갈색을 띤 투명한 액체가 들어있었는데, 거기서 희미하게 풍겨오는 냄새는 더 이상의 흥미를 잃게 했습니다. 코를 움찔거려 봐야 오래전의 뱃멀미를 연상케 하는 기름때 낀 기계를 연상케 했거든요. 칙칙한 색깔의 커튼이 아랫단을 반쯤 가리고 있었습니다. 안개낀 유월의 햇빛이 다소 황량하게 보이는 그 풍경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죠. 우욱! 얼마나 이 방이 싫었는지!
선원은 내 짐을 내리고 나서 날 보고 있었어요. 비록 도망가고 싶은 걸로 보이긴 했지만. 십중팔구는 승객이 웃돈을 더 주지 않을까 해서겠지요. 관리들에게 잘 보여야 좋은 일이 시작되는 법이니까, 그 사람에게 곧바로 동전 몇 개를 쥐어주었어요.
“손님께서 편히 지내시게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동전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미심쩍은 어조 때문에 난 놀라고 말았습니다. 생각보다 보수가 모자라서 불만이 있는 듯 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유리창처럼 속보이게 표출하는 거라고 편하게 생각했지요. 잘못짚은 거죠. 그 사람을 잘못 본 거예요.
II
그날은 특별히 말할만한 일이 없었습니다. 정시에 부두를 떠났고, 순조로운 운항에 즐거워했습니다. 날씨는 덥고 습했지만 증기선이 움직이면서 신선한 바람이 불어왔거든요. 모두가 첫날에는 바다가 친절하다고 믿게 되죠. 사람들은 갑판이나 계단을 거닐며 배에탄 낯선사람 들을 만나서 얼굴을 익히지요. 음식이 훌륭할지, 끔찍할지 아니면 별거 아닐지는 처음 두 끼를 먹기 전까지는 알 수 없어요. 보통 배가 파이어 섬에서 꽤 멀어지게 되면 날씨가 불안정해집니다. 처음에는 식탁이 사람으로 가득 찹니다. 그러다가 급격히 한산해지죠. 창백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각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쏜살같이 문을 향해 갑니다. 그러나 노련한 선원들은 옆으로 스쳐지나가는 멀미난 사람들보단 편하게 호흡하고 있었죠. 곁을 벗어나면 담황색 액체를 쏟아내는 데 충분한 공간이 있었어요.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여정은 다른 항로와 별 다를 바가 없었죠. 항해 도중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는 일은 거의 없어요. 고래나 빙산 같은 것들이란 참말 항상 흥미를 끄는 것들이긴 하죠. 하지만 결국에는 고래라는 것은 다른 고래랑 많이 닮은 법이고 드물게 빙하를 본다 해도 방에 틀어박히게 마련이지요. 우리 대부분이 바다의 증기선 위에서 하루 중 가장 만족스러운 순간을 보내는 법은 갑판에 마지막까지 남아서 마지막 여송연을 태워대는 거죠. 그러다가 충분히 피곤해지면 의식은 명료해지고 자유를 느끼게 되죠. 항해 첫날밤에는 기묘하게 나른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래서 평소보다 일찍 105호실의 침대로 돌아갔답니다. 들어 갔을 때, 내게 동행이 생긴 것을 알고 깜짝 놀랐어요. 내것과 많이 닮은 여행가방이 반대편 모서리에 놓여있더군요. 게다가 침대 윗단에는 잘 개킨 깔개가 지팡이, 우산과 함께 놓여있었죠. 나는 홀로 있기를 원했기 때문에 실망했어요. 하지만 내 룸메이트가 어떤사람인지 궁금해졌답니다. 그래서 그를 관찰해보기로 결심했죠.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는 시간이 많았어요.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그 사람은 매우 키가 컸으며 무지 말랐고 아주 창백한데다 옅은 갈색의 머리와 구레나룻에 무채색의 회색눈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자에 대해서라면 내 생각이지만 어느쪽이냐면 애매모호한 차림이었어요. 월 가에서 볼 수 있는 남자들에 비하면 모자라보이고, 그자가 거기서 뭘 하는 지 확실히 말해줄 만한게 없었어요. 까페 앙글레에 항상 혼자 와서 샴패인을 마시는 그런 종류의 남자였죠. 경마장에서 볼 수 있지만 거기서 더 이상 아무 일도 벌이지 않는 사람이요. 조금 지나치게 차려입었다 싶은게 좀 이상하긴 했죠. 어느 바다 증기선에나 서너명은 있는 그런 부류였답니다. 그와 친분을 쌓는 일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그리고 잠자리에 들면서 저 사람을 피하기 위해서 생활 습관을 관찰해봐야겠다고 속으로 생각했어요. 그 사람이 일찍 일어난다면 나는 늦게 일어나려고요. 그 사람이 늦게 잠든다면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고요. 그 사람에 대해 신경 쓰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 부류를 한번 알고 지내게 되면 그치들은 항상 눈앞에 나타나거든요. 가엾은 녀석들! 그에 대해 이것저것 판단하느라 곤란을 겪고 싶진 않았어요. 첫날밤 이후로 105실에서 그 사람과 절대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나는 푹 자다가 큰 소리 때문에 별안간 깨고 말았어요. 소리로 미루어 판단하건데 내 룸메이트가 윗 단에서 바닥으로 한 번에 뛰어내린 것 같았어요. 그 사람이 문의 걸쇠와 빗장을 더듬는 소리를 들었어요. 문은 거의 즉시 열리더군요. 그러더나 그 사람이 전속력으로 통로를 따라 뛰어 내려가는 소리를 들었어요. 나가고 난 다음에 문이 열려있더군요. 배는 약간 흔들렸어요. 그러다가 그 사람이 발을 헛디뎠거나 추락했을 거라는 걸 짐작하게 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하지만 그 사람은 마치 자신의 삶으로부터 달아나려는 듯 달려갔거든요. 경첩에 매달린 문짝은 배의 움직임을 따라 흔들렸고 그 소리는 날 성가시게 했죠. 나는 일어나서 문을 닫고 어둠속을 더듬으며 내 침대로 돌아왔어요. 다시 잠들었지요. 하지만 내가 얼마나 오래 잤는지 나도 모르겠단 말입니다.
내가 일어났을 때 아직 꽤 어두웠어요. 왜냐하면 불쾌할 정도의 추위가 느껴졌거든요. 게다가 공기가 축축해진 것 같았어요. 당신들도 알고 있을 겁니다. 바닷물에 젖은 선실에서 나는 독특한 냄새를요. 나는 최대한 내 몸을 감싸고 나서 다시 잠들었지요. 다음날에는 불평을 늘어놓았어요. 고를 수 있는 말 중에 최대한 강력한 형용사를 사용해서요. 내 룸메이트가 윗 단에서 몸을 뒤척이는 소리를 들었어요. 아마도 내가 잠이든 동안 돌아온 것 같았어요. 한번은 그 사람이 신음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답니다. 그래서 그 뱃멀미라도 하나 보다 하고 생각했죠. 그런 사람 밑에 있다는 건 특히나 불쾌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잠들었고 이른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잤습니다.
배가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전날 저녁 보다 훨씬 더요. 게다가 현창을 통해 들어온 회색빛이 모든 움직임을 흐릿하게 만들었어요. 유리창은 선체와 직각을 이루고 있었고 바다쪽이나 하늘쪽이나 똑같았답니다. 굉장히 추웠어요. 6월치고는 기묘하게요. 고개를 현창쪽으로 돌렸지요. 그리고 걸쇠가 벗겨진 채 완전히 열려있는 모습에 놀라고 말았답니다. 확실히 소리 내서 욕을 했어요. 그리고는 일어나서 닫아버렸습니다. 돌아오면서 침대 윗단을 노려보았지요. 커튼은 닫혀있었어요. 아마도 내 동행자도 나만큼이나 추웠겠죠. 충분히 잤다는 생각이 나를 스치더군요. 그 객실은 불편했지만 이상하게도 밤새 나를 괴롭혔던 습한 냄새는 맡을 수 없었답니다. 내 룸메이트는 아직 잠들어있었어요. 그자를 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죠. 그래서 옷을 입고 단번에 갑판으로 나왔답니다. 그 날은 덥고 흐렸어요. 물에서는 기름 냄새가 났죠. 내가 밖으로 나온 것이 일곱시 정각이더군요. 생각보다 많이 늦었어요. 아침 공기에 코를 킁킁 거리고 있던 의사를 만났습니다. 아일랜드 서부에서 온 젊은 남자로 굉장한 친구였죠. 까만 머리에 푸른 눈을 한 살집이 좋은 편인 그 사람이 가진 태평스러운 태도는 그를 보다 매력적이고 건강하게 보이게 했어요.
“멋진 아침이군요.” 나는 먼저 이렇게 말을 꺼냈죠.
“글쎄요.” 그 사람이 말했어요. 젊잖을 빼며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죠. “좋은 아침이기도 하지만 아니기도 하죠. 엄청나게 좋은 아침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아뇨. 엄청나게 좋은 건 아니네요.” 내가 말했지요.
“난 이런 걸 칙칙한 날씨라 칭한답니다.” 의사가 답했어요.
“어젯밤에는 굉장히 추웠죠. 내 생각이지만.” 내가 지적했어요. “ 어쨌든 현창이 완전히 열려있는 걸 발견했답니다. 잠자리에 들 때는 알아차리지 못했거든요. 게다가 객실이 축축하기까지 하지 뭡니까.”
“축축하다고!” 그가 말했다. “당신이 묵는 곳이 어디요?”
“105호….”
의사는 눈에 띄게 놀란 것 같았답니다. 그리고 나를 응시했죠.
“왜 그러십니까?” 내가 물었어요.
“오, 아닙니다.” 그가 답했어요. “그저 모두가 여행이 3일 남은 탓인지 객실에 대해 불평하더군요.”
“나도 불만이 있어요.” 내가 말했지요. “그건 확실히 적당히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요. 너무 심하다고요.”
“그건 도울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의사가 답했어요. “ 내 생각에는 거기 뭔가 있어요. 그러니까 내 일은 승객들을 놀라게 하지 않는 거라서….”
“내가 놀랄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내가 답했지요. “더 이상 엄청난 습기를 참을 수 없어요. 이대로는 내가 심한 감기에 걸려 당신을 찾아가게 될지도 몰라요.”
의사에게 여송연을 주었답니다. 그 사람은 그걸 받아 들고는 세심하게 살폈죠.
“더 이상 습하지 않을 거요.” 그 사람이 단언 했어요. “어찌되었든 내가 감히 말하는 데 다 잘 될 거예요. 룸메이트는 있나요?”
“그래요. 빌어먹을 친구죠. 한밤중에 문을 박차고 나가질 않나 게다가 문까지 열어두고 나갔다고요.”
또다시 의사가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았어요. 그러더니 여송연에 불을 붙이고는 정색을 했어요.
“그 사람 돌아왔나요?” 이윽고 그가 물었답니다.
“그래요. 자고 있었는데 깨버렸죠. 그 사람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답니다. 그리고 추위를 느끼며 다시 잠들었죠. 오늘 아침에 현창이 열린 것을 발견했고요.”
“여길 봐요.” 의사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이 배에 더는 상관하고 싶지 않아요. 이 배가 오명을 뒤집어써도 상관 않겠단 말이요. 내가 어쩔 작정인지 말해주겠습니다. 내 방은 꽤 넓답니다. 당신과 나눠 쓰겠어요. 비록 생판 모르는 남이라 할지라도.”
그 제안에 깜짝 놀라고 말았답니다. 상상도 할 수 없었어요. 왜 갑자기 내가 잘지는 일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는지요. 어쨌든 그의 태도는 그도 말했지만 선상에서는 별난 것이었죠.
“당신은 매우 훌륭한 사람입니다. 의사양반.” 내가 말했어요. “하지만 정말, 그 선실도 환기시키거나 청소 하거나 어떻게 하면 나아질 거라 생각해요. 왜 더 이상 배에 대해 신경쓰지 않겠다는 거죠?”
“우리 직업군에선 미신을 믿지 않지요.” 의사가 답했다. “하지만 바다는 사람을 그렇게 만듭니다. 당신에게 선입견을 심어주고 싶지 않아요. 게다가 놀라게 하고 싶지도 않고요. g지만 내 조언을 듣는다면 여기로 옮기게 될 겁니다.” 그는 진지하게 덧붙였어요. “당신 뿐아니라 그 어떤 사람도 105호에서 자선 안 됩니다.”
“어이가 없군요! 왜요?” 내가 물었어요.
“그게 여행이 삼일 밖에 안 남았을 때 사람들은 원래 배에서 추락하거든요.” 그의 답변은 진지했어요.
지성인이라면 펄쩍 뛰면서 매우 불쾌하게 여길 거라는 걸 나는 시인합니다. 의사를 노려보았답니다. 그 자가 날 놀리는 건가 싶어서요. 하지만 그 사람은 완전 진지하더라고요. 그 사람의 따스한 배려에 감사를 표하긴 했지만 규정을 어길 생각은 없다고 말했어요. 상륙하기 전에는 정해진 방에서 묵어야 하니까요. 더 이상 말이 없긴 했지만 전보다 더 침통해 보이더군요. 건너가기 전에 넌지시 비치긴 했죠. 그의 제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답니다. 시간이 꽤 흐르고 아침을 먹으러 갔을 때 승객들이 얼마 없더군요. 아침을 먹고 나서 책을 꺼내기 위해 방에 들렀어요. 침대 윗 단의 커튼은 아직도 닫혀있더군요. 한 마디도 들리지 않았답니다. 내 룸메이트는 아직 자고 있는 듯 했어요.
나왔을 때 나를 담당하는 일을 맡은 선원을 만났답니다. 그 자는 선장이 날 보자고 한다고 속삭였어요. 그러더니 아래쪽 통로로 황급히 달아나 버렸답니다. 마치 더 이상의 질문을 피하는 일에 지나치게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았어요. 선장의 선실로 갔을 때 그 사람이 날 기다리고 있더군요.
“손님.” 그가 말했어요. “당신께 부탁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원하는 게 뭐냐고 물었지요.
“당신의 룸메이트가 사라졌습니다.” 그가 말했어요. “어젯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더군요. 그 사람의 태도에서 뭔가 수상한 것을 느끼지 못했습니까?”
질문은 그런 식으로 계속되었죠. 한 시간 반 쯤 전에 의사가 보여줬던 두려움을 확인하는 듯 했어요. 나는 동요했답니다.
“그 사람이 배에서 떨어졌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죠?” 내가 물었죠.
“그렇게 되었을까 두렵습니다.” 선장이 답했습니다.
“그거 엄청나게 이상한 일…….” 차근 차근 이야길 털어놨죠.
“왜요?” 그가 물었어요.
“그 사람이 네 번째라고요, 그럼?” 나는 소리쳤어요. 선장이 또 다른 질문을 퍼붓더군요. 나는 설명했죠 의사가 말해줬다는 이야긴 빼고요. 내가 들은 105호실 이야기를요. 그 사람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 들려줬더니 매우 불편해 보이더라고요. 그날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었어요.
“무슨 말을 하는 거요.” 그 사람이 답했지요. “그 방에 묵었던 사람 셋 중 둘은 정확히 똑같은 소리를 하더군요. 그 사람들이 방을 박차고 나가서 통로를 내려갔다는 겁니다. 그 중 두 명은 배에서 떨어지는 걸 봤다고 하더군요. 배를 멈추고 보트를 내렸습니다만 찾지 못했습니다. 누구도 지난밤에 사라진 사람에 대해 보거나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정말로 실종되었다면요. 선원들이란 미신을 믿는 부류거든요. 아마도 뭔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 사람을 찾으러 갔지요. 오늘 아침에 그의 침대가 빈 것을 발견했거든요. 게다가 옷이 아무렇게나 흩어져있어서 마치 그걸 버리고 간 것 같았어요. 그 선원이 탑승자 중에서 그 사람을 본 유일한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여기저기 그 사람을 찾으러 다녔답니다. 그 사람은 사라졌어요! 지금은, 손님. 주변의 다른 승객들에게 이 걸 언급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겁니다. 이 배의 평판이 나빠지는 걸 원치 않습니다. 외항선의 자살이야기가 떠도는 것도 싫고요. 다른 항해사들의 방 중에 원하는 것을 고르세요. 제 방도 포함해서요. 편안한 여행을 위해서요. 괜찮은 거래 아닌가요?”
“참 그렇군요.” 내가 말했어요. “그래도 내게 강요하는 것 같군요. 하지만 난 혼자 지냈어요. 그래서 방도 혼자 써왔지요. 옮기지 않는 게 낫겠어요. 선원이 그 불행한 남자의 물건을 치워 준다면, 그대로 거기에 머물겠어요. 그 일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약속하겠습니다. 내 룸메이트를 따라가지 않을 거라고요.”
선장은 내 계획을 말리려 들었지만, 항해하는 동안 방을 혼자 쓰고 싶었지 항해사와 같이 쓰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내가 최고로 바보 같은 행동을 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죠. 하지만 충고를 받아들였으면 더 이상 이야기 거리가 없었겠지요. 기분 나쁜 우연의 일치가 남아있었죠. 같은 선실에서 잠자던 남자들이 몇 번이나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는 겁니다. 하지만 다 죽은 건 아니니까요.
그게 사건의 끝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의미로는 그랬죠.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이런 이야기에 동요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선장을 찾아가기까지 했습니다. 그 방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말했죠. 습한 편이었어요. 지난밤에 현창이 열린 채로 방치되어있었고요. 내 룸메이트는 탑승 당시부터 아파 보였으니 그 사람이 잠자리에 든 후에 착란상태에 빠졌을 거라고요. 그러니 나중에 나타날 거라 했습니다. 그 방을 환기시키고 현창을 단단히 조여야 한다는 것도요. 선장이 날 그대로 있게 해준다면 필요한 조치들이 즉시 처리되는 것을 보고 싶었어요.
“물론 손님이 원하는 곳에 머물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안달 하는 것 같긴 했지만 답은 했어요. “하지만 마음이 바뀌게 된다면 제가 그곳을 봉쇄했으면 합니다. 그러면 처리 될 겁니다.”
그런 관점으로 생각해본 일은 없기 때문에 선장을 놔두고 와버렸죠. 그리고 약속대로 사라진 동반자에 관한 일은 입을 다물었답니다. 나중에는 탑승객 중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하루 종일 기다릴 일도 없었다. 저녁 무렵에 나는 의사를 다시 만났습니다. 그러더니 그 사람은 내게 마음이 바뀌었냐고 묻더라고요. 말해줬죠. 그럴 생각이 없다고.
“그게 오래 가진 않을 겁니다.” 그 사람이 진중하게 말하더라고요.
III
저녁때 휘스트 게임을 했습니다. 그리고 늦게 잠자리에 들었죠. 지금에 와서 고백하건데 내 객실에 들어섰을 때 불길한 느낌이 들었답니다. 지난밤에 봤던 키 큰 남자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지금은 죽어서 물에 빠진 채로 이백 내지 삼백 마일은 뒤떨어진 곳에서 긴 너울을 따라 이리저리 휩쓸리고 있을 그 남자요. 옷을 벗기 전에 그 남자의 얼굴이 또렷하게 떠오르더군요. 게다가 갔을 때 침대 윗단의 커튼은 젖혀져 있기 까지 했습니다. 나에게 그 사람이 정녕 가버렸다는 것을 확신시켜주기라도 하려는 듯이요. 나는 물론 객실문의 빗장을 질렀지요. 별안간 현창이 열렸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가서 다시 채웠습니다. 여기까지가 참을 수 있는 한계였어요. 서둘러 가운을 걸치고 로버트를 찾으러 갔지요. 그는 내 여행을 책임지는 선원이었습니다. 기억해 보건데 무지하게 화가 났었나 봐요. 그래서 그 자를 찾아내서는 거칠게 105호 실로 끌고 들어왔지요. 그리고는 그 작자를 열려있는 현창 앞으로 밀었습니다.
“당신 뭐하는 인간이요? 불한당 같으니라고. 왜 현창이 매일 밤 저절로 열리는 거요? 규정을 거스르는 게 어떤 건지 모르는 거요? 배가 기울어져 물이라도 들어오기 시작하면 남자 열 명이 덤벼들어도 닫지 못한다는 거 모르시오? 선장에게 보고 하겠소. 당신이 배를 위험에 빠뜨리는 불한당이라고 말이요!”
나는 굉장히 심하게 날뛰었죠. 그 사람은 덜덜 떨더니만 창백해지더군요. 그러더니 원형 유리판을 두꺼운 황동제 창틀을 닫아걸기 시작했어요.
“왜 대답이 없는 거요?” 내가 난폭하게 말했어요.
“원하신다면요. 손님.” 로버트가 중얼거렸어요. “이 배에 탄 어떤 사람도 밤에 이 창문을 닫아걸 수 없습니다. 한번 스스로 해보세요. 손님. 저는 물론 이 배의 그 누구도 멈추지 못하니다. 손님. 저는 당연히 불가능하죠. 그러니까 제가 손님이라면 그냥 나가서 외과의사하고 자든지 어떻게 하든지 할 겁니다. 저라면 그렇게 합니다. 여길 보세요, 손님. 단단히 걸려있지요. 그렇지 않나요, 손님? 해보세요. 경첩이 움직이나 보시라고요.”
현창을 열려고 해보았지만 완벽하게 잠겨있었다.
“그러니까, 손님.” 로버트가 자신만만하게 반복했다. “A1등급 선원의 명예를 걸고 말하는데 저 창은 한 시간 반도 안 되어 다시 열릴 겁니다. 다시 잠가도 마찬가집니다. 손님. 거참 무서분 일이지요. 다시 잠가도요!”
“금화요? 말씀하신 겁니다. 손님. 아주 좋습니다. 고맙슴다. 좋은 밤 되시고요. 쾌적하게 쉬도록 하시구요. 어쨌든 모든 면에서 조은 꿈꾸시길. 손님.”
로버트는 허둥지둥 떠났답니다. 기뻐서 그런지 긴장이 풀린 것 같았지요. 물론 나는 그 사람이 자신의 부주의를 바보 같은 이야기로 얼버무리려 한다고 생각했어요. 나를 놀라게 할 생각으로요. 하지만 나는 믿지 않았죠. 결과적으로 그 사람은 금화를 얻었고 나는 아주 기묘하고 불쾌한 밤을 보냈죠.
잠자리에 들고 오 분쯤 후에 담요로 몸을 말아야했어요. 무정한 로버트가 문짝에 붙은 간유리 판 너머에서 계속해서 타오르던 불을 꺼버렸죠. 어둠속에서 조용히 누워서 잠을 청했어요. 하지만 이내 그게 불가능 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선원이 짜증낼 걸 생각하니 좀 신나더라고요. 하지만 불쾌한 감각 때문에 생각이 바뀌었답니다. 처음에 생각난 것은 물에 빠져죽은 내 동행에 대한 것이었죠. 그래서인지 더 이상 졸리지 않았습니다. 누운 채로 깨서 얼마간 시간을 보냈죠. 이따금씩 현창을 노려보면서요. 누운 자리에서 그냥 보였거든요. 어둠속에서 가냘프게 빛나는 수프 그릇 같은 것이 암흑 한 가운데 매달려있었죠. 한 시간쯤 지나자 거짓말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내 기억에 그대로 잠들었다가 차가운 공기가 흘러들어오는 바람에 깨고 말았습니다. 의심할 것도 없이 바닷 물보라가 내 얼굴을 강타하고 있었어요. 두 발로 서려 했지만 어둠속에서 움직이는 배안을 걷는 게 쉽진 않았어요. 잠자리를 벗어나자마자 현창 바로 밑까지 난폭하게 내팽개쳐 지더군요. 즉시 내 몸을 감쌌습니다. 어쨌든 그래서 무릎으로 기어가기로 했지요. 현창이 또 활짝 열려있는 게 아니겠어요! 잠갔는데도 말이죠!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모두 사실입니다. 제대로 추락하는 바람에 잠이 완전히 깨기 전까지는 깜빡 잠이 들었었답니다. 게다가 팔꿈치하고 무릎에 심하게 멍이 든 것 같았어요. 아침이 된 다음에야 그렇지 않을까 의심했던 대로 멍든 것을 확인 할 수 있었죠. 활짝 열린 현창을 잠갔습니다. 너무 불가사의한 일이라 그것을 발견하고는 두려움보다는 놀라움을 느꼈던 것을 아주 잘 기억하고 있어요. 내가 창문을 닫고 고리의 너트를 있는 힘을 다해 조였거든요. 객실은 무지하게 어두웠죠. 로버트가 내 앞에서 한번 닫아걸면서 한 시간 안에 열릴 거라고 한 것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지켜보기로 했는데, 또 다시 열리고 말았단 말입니다. 황동 부품들은 굉장히 육중해서 쉽게 움직일 수 없었어요. 나사가 좀 흔들렸다고 죔쇠가 풀렸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답니다. 두꺼운 유리 너머를 바라보니 바다는 흰색과 회색이 교차하고 있었고 배 옆으로는 포말이 부셔지고 있더군요. 한 시간 15분쯤 지났을 거예요.
일어섰을 때 갑작스럽지만 분명히 소리가 들렸어요. 내 뒤의 침대 안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소리였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거의 본능적으로 돌아섰어요. 그렇게 하긴 했지만 물론 어둠속이라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요. 아주 희미한 신음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튀어오를 듯이 객실을 가로 질렀죠. 그런 다음에 침대 윗단의 커튼을 잡아 뜯었습니다. 손을 쑤셔 넣자 거기에 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거기에 누군가 있었어요.
그 감각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손을 앞으로 뻗었을 때 마치 축축한 지하 저장고의 공기 속에 손을 담그고 있는 듯 했어요. 게다가 커튼 뒤에서 광풍이 일더니만 고여 있는 바닷물I 특유의 지독한 냄새가 났어요. 내 손에 사람의 팔 같은 것이 잡혔습니다. 하지만 부드럽고 축축했으며 얼음장처럼 차가웠어요. 하지만 내가 잡아 다니자 갑자기 그 생물이 나를 향해 난폭하게 튀어나왔어요. 눅눅하고 축축한 덩어리 같은 게 보였죠. 육중하고 축축한데다 지금까지도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힘이 느껴졌어요. 나는 비틀거리며 객실을 가로 질렀습니다. 그 때 바로 문이 열리더니 그 생물이 튀어나갔습니다.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었죠. 어서 스스로를 지켜야 했습니다. 문을 열고 나가서 내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로 추적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늦었어요. 10 야드 정도 뒤떨어진 상태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걸 봤다는 걸 확신합니다. 어두운 그림자가 희미하게 밝혀진 통로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림자는 빠르기가 어두운 밤에 등불을 켜고 달리는 이륜마차를 끄는 말과 같이 빠르더군요. 하지만 이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러다가 통로의 격벽을 따라 붙어있는 윤을 낸 난간에 매달려서 승강구로 향하는 통로에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내 머리칼은 곤두서 있었고, 얼굴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렸습니다. 그 일이 전혀 부끄럽지 않습니다. 나는 아주 끔찍하게 놀란 상태였거든요.
아직도 내 감각이 의심스러웠습니다. 게다가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아까 먹은 웰시 레빗(치즈 토스트)이 내게 맞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나는 악몽을 꾼 거예요. 내 객실로 돌아와서 용기를 내어 들어갔습니다. 방 전체에 고인 바닷물 냄새가 가득하더군요. 전날 저녁에 잠이 깼을 때처럼요. 들어가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해야 했어요. 내 짐을 더듬어서 작은 초 한 상자를 찾았습니다. 철도용 길잡이 등불에 불을 붙였습니다. 만약을 대비해서 늘 가지고 다니던 거죠. 등불을 꺼내들고 나가고 싶었어요. 현창이 또다시 열려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전에 절대로 느껴보지 못했으며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은, 모종의 소름끼치는 공포가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하지만 내게는 등불이 있었으므로 윗단 침대를 조사해보기로 했습니다. 바닷물로 푹 젖어있을 거라 기대했죠.
하지만 실망하고 말았어요. 침대에는 잠잔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게다가 바다 냄새가 강하게 났습니다. 그러나 침구는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말라있었어요. 로버트가 지난밤에 일어난 사고 때문에 침대 정리 할 용기가 나지 않았던 모양이라고 생각했지요. 거참 무시무시한 꿈이었어요. 커튼을 걷어치우고 그 곳을 아주 세심하게 조사했습니다. 그곳은 완벽하게 말라있었어요. 그러나 현창은 다시 열려있었습니다. 알 수 없는 공포에 당황하면서도 문을 닫고 걸쇠를 걸었습니다. 황동제 갈고리에 내가 가지고 다니던 두꺼운 지팡이를 쑤셔 넣었어요.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그것을 조였죠. 두꺼운 금속이 압력을 받아 구부러질 때까지요. 그리고 나서 길잡이 등불을 붉은 벨벳 소파 머리맡에 걸었답니다. 그 다음에 거기 앉아서 할 수 있는 한 내 감각을 회복시키려 했어요. 밤새 거기에 앉아있었습니다. 쉴 생각은 하지도 못했어요. 더 이상 생각하기조차 힘들었지만요. 하지만 현창은 여전히 닫혀있었습니다. 엄청난 힘들 들이지 않고 다시여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요.
마침내 아침이 밝았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옷을 입었지요. 간밤에 일어난 일을 곰곰이 생각해보았어요. 참 날씨가 좋은 날이었죠. 그래서 갑판으로 나갔습니다. 이른 아침의 순수한 햇살을 맞으니 기쁘더군요. 그리고 푸른 바다에서 불어오는 산들 바람의 냄새를 맡았지요. 내 객실에서 나는 정체된 썩은 악취와는 너무나 달랐어요. 본능적으로 고물 쪽으로 돌아서 외과의의 객실로 향했습니다. 그 남자는 입에 파이프를 물고 서있었어요. 지난날과 꼭 같이 아침 공기를 쐬고 있었지요.
“좋은 아침입니다.” 그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를 의심스럽다는 듯 나를 살피고 있었죠.
“의사양반, 당신이 확실히 옳았어요.” 내가 말했어요. “그곳은 뭔가 잘못되었어요.”
“당신이 마음을 바꿀 거라 생각했지요.” 그 양반은 의기양양하게 답했어요. “끔찍한 밤을 보냈지요, 예? 기운 나게 해드릴까요? 내게 최고의 방책이 있답니다.”
“사양하겠습니다.” 내가 외쳤어요.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말해주고 싶어요.”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능한 정확하고 분명하게 설명하려 애썼어요. 일생을 통틀어 이전에는 겪어본 일 없는 공포를 경험했다는 것도 빼놓지 않고 말했지요. 현창이 일으킨 현상에 대해서 특별히 자세하게 설명했답니다. 내가 증명할 수 있다는 것 까지요. 나머지는 환상이라 치더라도. 사실 밤에 두 번이나 닫았고 두 번째는 내 지팡이로 황동을 조이느라 구부러뜨리기까지 했으니까요. 이점에 대한 것이 좋은 증거가 될 거라 믿었습니다.
“내가 그 이야기를 의심이라도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모양이군요.” 의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현창의 상태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을 듣고 미소 지었습니다. “나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아요. 당신을 다시 초대하겠습니다. 짐을 가지고와요. 그리고 내 방의 절반을 쓰세요.”
“오셔서 나와 함께 하룻밤을 보냅시다.” 내가 말했지요. “나를 도와서 이 괴물의 정체를 파헤쳐봅시다.”
“그 뭔가의 정체를 파헤칠 생각이라면 당신이 해보세요.” 의사가 답했어요.
“뭐라고요?” 내가 물었지요.
“바다의 정체라고요. 나는 이 배를 뜰 겁니다. 그건 현명하지 못해요.”
“당신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내가 방법을….”
“나는 안 돼요.” 의사가 재빠르게 말했습니다. “내 일이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에 한정되어있어요. 유령이나 괴물에 관한 건 아닙니다.”
“정말로 그게 유령이라 생각하나요?” 나는 다소 거만하게 물었습니다. 하지만 귀신 들린 것 같았던 지난밤의 초자연적인 공포의 느낌은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는 걸 말해주었죠. 의사는 나를 날카롭게 바라보았답니다.
“이런 일들에 대해서 어떠한 논리적인 설명이 가능하다는 겁니까?” 그가 물었어요. “아니죠. 당신은 못해요. 뭐, 당신이야 설명할 방법을 찾을 거라 말하겠지만요. 내가 말하는데 당신은 못해요. 간단히 말해서 거기엔 아무것도 없거든요.”
“하지만 친애하는 신사양반.” 내가 말했어요. “당신은 과학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런데도 그게 뭔지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가 소리치듯이 답했어요. “그리고 가능하다고 해도 그걸 증명해내는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아요.”
내 객실에서 하룻밤을 더 혼자 보내는 일에 대해선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어쨌든가에 소동의 근원을 캐내겠다는 결심은 확고했거든요. 이틀 동안 밤을 보내면서 거기에 자러오는 사람은 여럿이 아니라 혼자라고 생각했어요. 따라서 나와 같이 지켜볼 다른 누군가를 구하지 못하더라도 해보기로 결심했어요. 의사는 이 같은 실험이 확실히 내키지 않는 듯 했어요. 그 사람은 스스로를 외과의라 칭했고, 그렇다면 배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종류의 사고에 항상 대처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했죠. 그 자신의 신경 줄을 뒤흔들 만한 일은 할 수 없을 거예요. 어쩌면 그 사람이 확실히 옳았어요. 하지만 그 사람의 조심성을 자극해서 마음을 돌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사에 앞서, 그 사람은 이 배에서 나와 함께 그런 수사에 동참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 말해주었죠. 그 뒤로 조금 더 대화를 지속하다가 그 사람을 두고 나와 버렸어요. 조금 후에 나는 선장을 만났답니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해줬죠. 그 누구도 나와 함께 밤을 보내려 하지 않더라도 밤새도록 불을 밝히고 거기에 남아서라도 해볼 거라고요.
“이거 보세요.” 그 사람이 말합디다. “내가 어떻게 할지 말씀드릴게요. 함께 지켜봅시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는 겁니다. 내 예상이 맞다면 우리는 해답을 찾게 되겠죠. 통로를 몰래 살금살금 돌아다니면서 승객들을 놀라게 하는 녀석이 있을 겁니다. 그저 침대가 뭔가 기묘한 걸로 만들어 졌을 가능성도 있지요.”
선상의 목수를 불러다가 선실과 그 장소를 조사해보자고 제안했어요. 하지만 나는 선장이 나와 함께 밤을 보내주겠다는 제안에 지나치게 흥분해 있었답니다. 그 사람은 인부를 불러다 명했어요. 내가 요구한 것이면 어떤 것이든 들어주라고요. 일단 선실로 갔지요. 윗단 침대의 침구가 깨끗하게 정리된 것을 봤습니다. 그리고는 그 곳을 철저하게 조사했습니다. 혹시나 바닥 판이 꺼진 데는 없는지, 내지는 벽의 판자가 열리는지 밀어보았지요. 바닥의 모든 판자를 두드려 보기로 했습니다. 아랫단 침대의 이음쇠를 하나하나 풀어서 조각 조각분해 해봤습니다. 말하자면 객실의 구석구석 1인치까지 조사하거나 시험해 보지 않은 곳이 없다는 겁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리만치 질서 정연했어요. 그래서 모든 조각을 제자리에 돌려놓았죠. 우리가 일을 마치고 나니 로버트가 문을 열고 들어와 보더군요.
“현창에 대한 건 자네가 옳았네. 로버트.” 그렇게 말하고는 약속했던 금화를 건네주었습니다. 목수가 조용히 능숙하게 일을 해치우더니 내 쪽으로 오더군요. 그때 그가 말했습니다.
“저는 정직한 사람입니다. 손님.” 그 사람이 말했어요. “제 생각이지만 짐을 빼내는 게 좋겠어요. 그리고 4인치 나사 반다스로 이 문을 막게 해주세요. 이 선실에는 절대로 안 들어가는 게 좋은 일입니다. 제 기억에만해도 이곳에서 네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네 번 항해하는 동안이요. 포기하는 편이 낫습니다. 손님. 포기하는 편이 낫다고요!”
“하룻밤만 더 해볼 생각일세.” 내가 말했지요.
“포기하는 게 나아요. 손님. 포기하시는 게 낫다고요! 그건 엄청나게 불길한 일이라고요.” 인부는 반복하더니, 그의 연장 가방을 놔둔 채 선실을 떠나 버렸습니다.
하지만 내 용기는 선장을 관찰 동료로 얻은 덕에 제법 고무되어있었고, 이 요상한 사건의 끝장을 보는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죠. 나는 저녁 때 웰시 레빗과 그로그술을 참았답니다. 습관적으로 즐기던 휘스트 게임조차 끼지 않았어요. 내 정신을 고요히 가라앉히길 원했거든요. 선장의 눈에 좋은 모습으로 보이고 싶은 허영심이 있었거든요.
IV
선장은 뱃사람 중에서도 특출 나게 강인하고 유쾌한 부류 중 하나였습니다. 용기와 담대함 그리고 어려운 상황일 때 높은 지위를 믿고 맡길 만한 침착성이 결합된 사람이었죠. 그 사람은 가만히 이야기만 하고 있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기꺼이 나와 함께 조사에 착수하려는 것만 봐도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죠. 일반론이나 미신이라고 웃고 넘어갈 만한 게 아니라고요. 그 자신의 평판 만큼이나 배의 평판도 위태롭게 만들 가능성이 높은 일이었습니다. 승객이 익사하는 일이 가벼운 일이 아님을 그도 알고 있었어요.
10시 정각 무렵데 나는 마지막 여송연을 태웠답니다. 그 사람이 다가오더니 어둡고 더운 갑판에서 다른 승객들 사이를 배회하고 있던 나를 끌어냈습니다.
“이건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브리즈번 씨.” 그 사람이 말했지요. “어느 쪽이든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합니다. 실망스러운 시간을 보내거나 아니면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겠지요. 내가 웃음거리나 제공해주려고 이 일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아셔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맹세해주길 바랍니다. 오늘 밤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내일 그리고 다음날도 시도해보는 겁니다. 준비 되었나요?”
그래서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객실에 들어갔지요. 내려가다가 통로 아래쪽에서 늘상 짓는 미소를 짓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로버트를 만났습니다. 뭔가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듯 했지요. 선장은 문을 닫고 빗장을 질렀어요.
“여행 가방을 문에 기대 놓는 게 좋겠어요.” 그 사람이 제안했습니다. “우리 중 한 사람이 거기 앉아 있지요. 그러면 아무도 나갈 수 없습니다. 현창은 잘 잠겼나요?”
아침에 두고 간 그대로라는 걸 발견했지요. 물론, 지렛대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열수 없게 해놨거든요. 그 누가 와도 열 수 없었을 겁니다. 윗단 침대의 커튼을 걷고 그 안이 멀쩡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선장의 조언에 따라 길잡이 등불을 켜서 그 하얀 시트 위에다 놓았습니다. 그 사람은 말했던 대로 여행 가방 위에 앉아서 문을 막고 있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객실 전체를 철저히 조사해달라고 요청했지요. 작업은 금방 끝났답니다. 단지 아랫단 침대 밑과 현창아래 놓인 소파만 살펴보면 되었으니까요. 그 공간들은 완전히 비어 있었습니다.
“그 어떤 인간도 안에 들어오는 건 불가능합니다.” 내가 말했지요. “또한 그 어떤 인간이라 할지라도 창문을 열 수는 없어요.”
“아주, 좋습니다.” 선장이 침착하게 말했지요. “지금부터 보게 되는 뭔가는, 분명 상상에 지나지 않거나 뭔가 초자연적인 존재일 겁니다.”
나는 아랫단 침대의 가장자리에 앉았어요.
“처음 그 일이 일어났을 때는.” 선장이 말했습니다. 다리를 꼬고 몸을 문간에 기대고요. “3월이었습니다. 그 승객은 여기서 묵었죠. 윗단 침대에서요. 그리고 미치광이로 판명되었습니다. 아무튼 그 사람은 약간 미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죠. 게다가 여행하는 걸 친구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답니다. 한밤중에 뛰쳐나가더니만 스스로 몸을 던졌답니다. 경비원이 발견하고 제지하기도 전에요. 배를 멈추고 보트를 내렸습니다. 고요한 밤이었죠. 악천후가 다가오기 직전이었습니다. 결국 그 남자를 찾을 수 없었어요. 물론 그 사람의 자살은 광기 탓으로 추정되었지요.
“늘 있는 일이 아니었나요?” 내가 넋을 잃고 말했습니다.
“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아니에요.” 선장이 말했습니다. “전에는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전에 탔던 다른 배에서조차 들어본 일 없어요. 그러니까 내가 말한 3월에 일어난 이야깁니다. 다음번 항해 때는 대단히…. 뭘 보고 있는 겁니까?” 그 사람이 별안간 설명을 멈추고 물었습니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내 시선은 현창에 고정되어있었어요. 황동 고리 나사가 아주 느리지만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너무 느리기 때문에 그것이 움직인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어요.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면서 그 위치를 마음에 새겨두었습니다. 그리고 위치가 바뀌는지 아닌지 확인하려 했지요. 내가 바라보는 것을 선장도 바라보더군요.
“움직인다!” 그 사람이 확신에 찬 어조로 외쳤습니다. “아냐, 그렇지 않아.” 잠시 후에 그렇게 덧붙였어요.
“나사가 삐걱거린 모양입니다.” 내가 말했지요. “낮동안 풀렸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내가 이번 저녁에 아침에 떠날 때처럼 단단히 조여진 것을 확인 했다고요.”
일어서서 너트를 시험해보았습니다. 확실히 느슨해져서 손으로도 쉽게 움직일 수 있었어요.
“거, 기괴한 일이군요.” 선장이 말했어요. “두 번째 남자는 바로 그 현창으로 사라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끔찍한 시간을 보냈지요. 한밤중에 일어난 일인데, 날씨가 아주 나빴어요. 현창이 열려서 바닷물이 새어 들어온다는 경보가 울렸습니다. 갑판 아래로 내려갔을 때 모든 곳이 물바다였답니다. 계속해서 물이 쏟아져 들어오니 배가 흔들리더군요. 게다가 모든 창문이 꼭대기의 걸쇠에 매달려서 달랑거리고 있었어요. 현창 구멍을 막고 있는 게 없더군요. 어쨌든 우린 그걸 닫았답니다. 그렇지만 그 물이 상당한 손해를 끼쳤죠. 그 이후로 그 곳에서는 두고두고 바닷물 냄새가 났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스스로 몸을 던졌다고 추정했어요. 그 사람이 한 짓은 주님만이 알고 계실 겁니다. 선원들이 계속해서 말하더군요. 여기 있는 그 어떤 창문도 닫을 수가 없다고요. 맹세컨대, 지금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안 나나요?” 그렇게 묻고는 수상쩍다는 듯 공기를 킁킁 거렸습니다.
“그래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진저리를 쳤습니다. 그와 동시에 선실 안의 정체된 바닷물 냄새가 더 강해졌거든요. “바로, 이 정도 냄새가 나려면, 그 장소는 축축해야 합니다.” 나는 계속 말했지요. “그리고 아침에 목수와 함께 조사 했을 때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말라있었어요. 이건 정말 정도를 벗어난…. 이보쇼!”
윗단 침대에 놓인 내 길잡이 등불이 별안간 꺼졌습니다. 문에 붙은 원창 너머로는 아직 상냥한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 너머로 보통 등불이 희미하게 보이고 있었죠. 배가 심하게 흔들렸어요. 윗단 침대의 커튼이 바깥쪽으로 심하게 펄럭거리더니 다시 돌아갔습니다. 나는 재빠르게 앉아있던 침대 가장자리에서 일어났어요. 동시에 선장이 놀라움으로 큰 소리를 지르며 발을 옮겼습니다. 등불을 내려서 살펴볼 요량으로 몸을 돌렸을 때 그 사람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곧바로 도움을 요청하더군요. 그 사람에게 튀어갔습니다. 그 사람은 온 힘을 다해 현창의 황동 걸쇠와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있는 힘을 다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손과는 반대로 계속 돌아가고 있는 듯 보이더라고요. 늘 가지고 다니던 육중한 참나무 지팡이를 고리에 끼우고 있는 힘을 다해 조였습니다. 그러나 튼튼한 나무가 별안간 부러지는 바람에 소파위로 쓰러지고 말았답니다. 다시 일어났을 때 현창은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게다가 선장은 입술이 창백하게 질린 채 문에 기대 서 있더군요.
“뭔가가 침대에 있어요!” 그가 괴상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눈을 거의 화등잔만하게 뜨고요. “내가 살펴볼 테니 그 동안 문을 막고 계세요. 도망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그 사람이 자리를 지키는 동안에, 나는 아랫단 침대로 뛰어올랐습니다. 그리고 윗단 침대에 있는 것을 꽉 붙잡았지요.
그것은 뭔가 유령같은, 말할 수 없이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내가 잡고 있는데도 움직이더군요. 오랫동안 물에 잠겨있던 남자의 몸과 같았답니다. 게다가 아직 움직이는데다 10대 청년만큼이나 강했어요. 그렇지만 온 힘을 다해 그 미끄덩하고 질척거리는 끔찍한 것을 붙잡았습니다. 생기가 없는 하얀 눈이 어둠속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바닷물 썩은 냄새가 가득했어요. 게다가 지저분하고 축축한 번들거리는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이 생기 없는 얼굴을 덮고 있었지요. 나는 그 생기 없는 것과 격투를 벌였습니다. 그게 내게 덤벼들면서 나를 뒤로 밀쳤습니다. 거의 팔이 부러질 뻔했지요. 그게 시체의 팔로 내 목을 감았습니다. 그 살아있는 망자는 나를 압도했어요. 그래서 나는 결국 큰 소리를 지르며 넘어졌습니다. 그랬더니 놓치더군요.
내가 넘어졌을 때 그 괴물은 나를 넘어서 뛰어갔습니다. 마치 선장에게 덤벼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 사람이 발이 굳은 채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마치 망자의 맹공이라도 얻어맞은 듯 보였지요. 그러더니 그 사람도 얼굴을 위로 한 채 넘어져버렸습니다. 알 수 없는 공포의 비명을 지르면서요.
그 괴물은 잠시 멈춰 서서, 쓰러진 그 사람의 주위를 맴도는 것처럼 보였지요. 그래서 매우 공포스러운 나머지 다시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괴물은 별안간 사라져버렸습니다. 내 감각을 흩트려 뜨려놓고 열려진 현창으로 나간 것 같았습니다. 그 구멍의 크기가 작다는 것을 감안 할 때,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그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답니다. 마침내 부분적으로나마 감각과 움직임을 회복했고 그 즉시 내 팔이 부러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왼쪽 전박 손목 부근의 조그만 뼈였죠.
어떻게 해서든 두 발로 섰습니다. 그리고 멀쩡한 손으로 선장을 일으키려 했지요. 그 사람은 신음하면서 꿈틀거리더니 마침내 정신을 차렸습니다. 다친 데는 없었지만 심하게 충격받은 것 같았어요.
자, 더 이상 듣고 싶으신가요? 더 이상은 없답니다. 이것이 내 이야기의 결말입니다. 목수가 계획대로 4인치 나사를 반다스 가져다가 105호실의 문을 막았습니다. 만약에 캄차카 호를 타고 여행하실 일이 있다면 그 방의 침대에 대해 물어보세요. 그 방은 예약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겁니다. 그래요. 죽은 생물이 예약한 거죠.
나는 외과의의 선실에서 항해를 마쳤답니다. 그 사람은 부러진 팔을 진료하면서 내게 충고했어요. “귀신이나 괴물 주변을 얼쩡거리는 짓”은 더 이상 하지 말라고요. 선장은 굉장히 조용했어요. 그리고는 다시는 그 배를 타고 항해하지 않았죠. 아직 그 배가 멀쩡한데도 말이죠. 물론 나도 더 이상 그 배를 타고 항해하지 않을 겁니다. 그것은 아주 불쾌한 경험이었고, 아주 심하게 놀랐거든요. 그런 괴물은 좋아할 수가 없어요. 그게 다에요. 그것이 내가 유령을 본 사연입니다. 그게 유령이라면 말이지요. 어쨌든 그것은 죽었으니까요.
스트라이크가 옳았다. 금성의 밤이란 절대적인 어둠이었다. 검은 장막으로 덮인 불켜진 무역기지의 바깥쪽 계단을 오르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문을 두드리는 규칙적인 금속성의 소리가 들리자 랜섬이 문을 열었다. 게리 칼라일이 뛰어 들어온다.
“스트라이크 씨” 그녀는 근심으로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말했다. “머리가 전혀 먹으려 들지 않아요. 억지로 밀어 넣었는데도 아무것도 목으로 넘기지 못했어요. 그렇다고 풀어 주기라도 하면 그 즉시 끔찍한 발작을 일으킨다고요!”
무역업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서 왜 나한테 온 거죠?”
“어떻게 하면되는 지 알려줄 수 없나요? 저들은 굶어 죽으려 해요. 그리고 죽은 머리는 시장가치가 없어요. 나는 최소한 한 마리의 건강한 머리 없이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맹세했어요. 그러니 날 도와줘요!”
“그 누구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절대로 저것들을 산 채로 데려가지 못할 겁니다. 전에 말했잖아요. 머지않아 당신도 그걸 깨닫게 되겠죠. 당신네들에게도 자비심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두 녀석이 살아있는 동안에 집에 데려다 주도록 해요.”
게리의 눈동자에 푸른 불길이 일어났다.
“나는 내 양심을 저버리지 않고 자비롭게 행동하려 했어요. 가능하기만 하다면 머리들을 살려서 집으로 데려갈 수도 있겠죠. 지금은-당신에게 도와줄 생각만 있다면-위관을 통해 음식을 먹이려하고 있어요. 그게 실패한다면 주사를 놓을 거고요. 내 생각에 당신은 무얼 먹여야 할 지 알 것 같아요.”
“희망이 없어요. 로저도 그렇게 했답니다. 당신네들이 머리를 집에서 떼어내면 그것들은 신경계에 충격을 받아서 신진대사가 엉망이 됩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소화시킬 수 없게 되는 거죠.”
게리는 화를 내며 돌아갔지만 24시간 이내에 다시 돌아오고 만다. 중압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았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수면부족으로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스트라이크.” 그녀가 빌었다. “뭐든 방법이 없을까요? 그 녀석들은 시간이 갈수록 야위고 있어요. 나한테 화가 나서 혼내주고 싶은 거라면 ‘삼촌’ 그냥 도와주…”
스트라이크는 칼날을 돌리다가 꽉 쥐는 바람에 다칠 뻔했다.
“아첨한다고 내가 당신을 달래기 위해 머리 한 쌍을 더 희생시킬 거래 생각했다면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것은 벌집을 건드린 셈이었다. 게리는 이성을 잃었다. 그녀의 결심을 하잘 것 없는 것으로 취급한 것이 전투의지에 불을 지폈다. “저주받을 것들!” 그녀는 분노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날 괴롭힌단 말이지. 그래도 놈들을 살아있게 만들 거야. 내가 놈들을 살려둘 거라고!”
48시간 후에 그녀는 다시 돌아와서는 스트라이크의 팔을 거칠게 잡아 흔들었다. 머리가 조용히 순사하는 바람에 그녀는 완전히 정신이 나간상태였다. 그녀는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토미.” 그녀가 울부짖었다. “난 더 이상 못 견디겠어요. 그 녀석들은 그냥 거기 앉아서 그렇게 무력하고, 그렇게 깨질 것 같은 모습으로 조용히 날 바라보고 있어요. 그 불쌍한 갈색 눈이 내가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다니는 것 같아요.
그 녀석들이, 그것들이 내게 최면을 걸고 있어요. 어둠속에 있는 녀석들이 보여요-내가 자려고 하면 꿈속에서 녀석들을 봐요. 가엾은 것- 그리고 무서워요. 승무원들이 주변에 있는 지금도 녀석들의 얼굴이 조용히 날 비난하고 있어요. 못 참겠어요.”
스트라이크는 이 갈피도 못 잡고 있는 여인이 마음에 걸렸다.
“지금은 왜 로저나 다른 사람들이 머리에 대한 일을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지 알았지요? 내가 말해봤자 당신이 믿지 않았으리라는 것도요?”
“알았어요. 이해해요. 로저는 자신의 유약한 생각을 부끄럽게 여겼겠죠. 저 기묘한 금성의 원숭이를 보는 사람은 누구나 당황할 거라 생각해요. 최면을 일으키는 갈색 눈을 보기만 해도 마음이 누그러져 버리니까.
“나, 나는 부하들을 보내서 나무를 통째로 파오라고 시켰어요. 그것들 전부를 머리와 함께 지구로 가지고 돌아가려고요 그게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어요.”
“뭐라고요!” 스트라이크는 별안간 걱정이 된 나머지 소리를 질렀다. 바보 같으니! 원주민의 지역신을 훔치는 게 실패하자, 이제는 성지를 통째로 강탈하려 하고 있다니! “저 어둠속에서 말이요? 그건 자살행위요!”
무역업자는 펄쩍 뛰며 모피코트와 발열 패드를 빠르게 챙겨 입고 금성의 혹독한 밤을 여행할 준비를 했다. 게리는 놀란 듯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소리죠? 그들이 위험에 쳐했나요?”
“원주민들이 지난 70시간동안 거래 물품을 가지고 오지 않았어요.” 그는 으스스하게 답했다. “그건 문제가 생겼단 이야기라고요. 엄청나게!”
“하지만 그들도 밤에는 나올 수 없을텐데요! 온도가 온도니 만큼!”
“그들에게는 영향을 주지 않아요. 원래 수생 생물로부터 진화한 종이고 추위도 마찬가지라고요. 이 밤도 그들에겐 본래 위협이라고 할 만한 게 아닙니다.”
그는 금 탐지기와 라디오 수신기를 착용하고 성큼성큼 걸어서 문을 나섰다. “ 당신은 여기 있어요. 로이! 광선 작동시켜!” 그는 등불을 꼭 쥐고 밖으로 나갔다.
게리는 입을 삐죽 내밀며 털 망토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결연히 스트라이크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짧은 논쟁 끝에 무역업자의 분노는 수그러들었다.
“지금은 논쟁할 때가 아닙니다. 최소한 도와주기라도 하세요. 이걸 들어요.” 그녀에게 강력한 탐조등을 들리고 나서 함께 이동하기 시작했다.
불빛이 어슴푸레 비치는 곳 마다 신세계가 펼쳐져있었다. 모든 것이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있었다. 생기라고는 전혀 없이 고요하기만 했다. 숨 쉴 때마다 냉기의 칼날이 폐를 찌르고 들어왔다. 강렬한 고요 속에서 머리의 나무를 옮기는 힘든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탐사대의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빠르게 달려가니 그들이 분명히 보였다. 정지된 빛들이 원을 일꾼들을 둘러싸고 원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반중력 장치의 끈을 나무에 묶고 얼어붙은 땅을 부드럽게 하고 있었다. 스트라이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작업을 중지하시오. 제군들! 도구를 잡아서 뒤로 던져….” 그는 말을 멈췄다. 탐지기의 바늘이 별안간 발작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빨리!” 스트라이크가 외쳤다. “원주민이 가까이 왔소! 도망치시오!”
하지만 작업반은 빛에 눈이 부셔하며 바보같이 입을 딱 벌리고 질문을 쏟아내었다. 스트라이크가 그들에게 달려가며 화가 나서 소리쳤지만, 그도 눈앞에 보이는 엄청난 광경에 할 말을 잊고 말았다. 땅을 파던 작업반의 사람들이 차례로 쓰러지고 꿈틀거리며 불가사의하게 몸을 뒤틀어대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는 발을 하늘로 똑바로 향하고 기괴하게 걷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얼굴을 흙속에 처박고 지구를 뚫고 걸어 들어가려 했다. 똑바로 서있는 유일한 사람은 한발로 서서 아이스 스케이터처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세상에!” 게리가 불안한 듯 외쳤다. “저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죠?”
스트라이크가 그녀의 허리를 꽉 붙잡았다. “가스입니다! 숨 쉬지 말아요! 원주민들은 흉악한 금성의 식물에서 이것을 추출합니다. 신경계에 침투해서 반고리관을 건드립니다. 균형 감각이 박살나는 거죠!” 그는 안개 속을 뚫고 기지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채 세 걸음도 가기 전에 스트라이크의 세계는 빙글 빙글 돌면서 그를 구역질나게 만들었다. 그는 게리를 놓치고 균형을 잡기 위해 팔을 뻗으며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발밑의 지면이 울렁거린다. 그의 발은 자꾸만 허공을 휘젓고 있는 것 같았다. 나무줄기와 직각을 이루고 있었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의 눈이 거침없이 떨리고 있었다. 끔찍한 메스꺼움이 그를 덮쳤고 덕분에 몇 번인가 격하게 토하고 말았다. 그가 바로 서기 위해 애쓰느라 격렬하게 날뛰는 바람에 그의 장비들은 대부분 흩어지거나 망가져 버렸다.
스트라이크는 세상이 풍랑을 만난 배처럼 요동치는 동안 조용히 누워있기로 했다. 그는 일꾼들이 놀라서 지르는 비명, 돌진하는 발소리, 단조롭게 찍찍대고 긁어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금성인이 대기의 유독한 원소를 골라내는 아가미 같은 호흡기관이 내는 소리였다.
그때 게리의 비명소리가 그의 의식 속으로 파고들었다. 단말마의 외침일 뿐 도움을 구하는 소리도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히 그녀가 어딘가로 옮겨지면서 발버둥치는 소리였다.
스트라이크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는 눈으로 빠르게 흐리고 뒤섞인 형체의 움직임을 뒤쫓았다. 일어섰던 남자는 문자 그대로 바늘꽂이가 되어서 쓰러져버렸다. 원주민들의 독창에 찔려 고슴도치가 된 것이다. 벌써 몸이 심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다른 이들도 부상을 당한게 분명했다. 게다가 스트라이크의 목에서는 엄청난 토사물이 쏟아져 나왔고 그는 또다시 통증에 뒹굴고 말았다.
하지만 스트라이크는 가스의 영향권 제일 말단에 걸쳐진 상태였기에 그 영향을 조금밖에 받지 않았다. 그는 차가운 대지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서 조심스럽게 호흡하면서 들이마신 공기의 냄새를 시험해봤다. 그리고 힘차게 숨을 내쉬었다.
차차 대지의 회전이 느려지고 사물의 움직임이 멎었다. 의식이 돌아오자 머리가 쪼개질듯이 아파왔다. 두개골의 모든 신경의 말단을 거칠게 쥐어짜는 듯 했다. 그러나 눈앞에 들어온 광경에 몸의 불편한 감정이 모두 사라지고 공포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원주민들이 복수를 위해 게리 칼라일을 희생 제물로 바치려 하고 있었다!
스트라이크는 원주민의 지능을 얕보고 있었다. 그들은 생각보다 똑똑해서 나무줄기에 매인 반중력반이 머리에게 크나큰 위협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게다가 천천히 그 기계의 작동방법을 알아내고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조절장치의 가장 치명적인 스위치를 찾아내고, 전원 스위치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게리는 축 늘어진 채 바닥에 묶여있었는데 이따금씩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깡마른 몸은 어림잡아 6개가 넘는 반중력반에 엉망진창으로 묶여있었다. 그리고 금성인의 대장이 스위치를 향해 몸을 굽히고 있었다.
스트라이크는 분노로 소리치며 움직이기 시작해다. 무릎이 후들거리는 바람에 다시 바닥에 주저 않고 말았다. 아직 아니었다. 힘이 없었다. 그는 기도의 말을 읊조리며 다음 쭉 늘인 채 전원장치 위를 떠돌고 있는 원주민의 손가락을 지연시켜주기를 바랐다.
만일 그가 그것을 안 좋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면-그러나 스트라이크의 마음속은 차분해졌다. 그는 확신이 없었다. 허나 게리가 형태 없는 메스에 갈려서 피투성이 곤죽이 되지 않게 하려면?
스트라이크는 비장하게 빛의 원 옆의 무장해제 된 작업조의 무기가 쌓인 곳을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곳은 멀었다. 너무도 멀었다. 절대 제때 도달할 수 없었다. 통증이 엄습하는 바람에 다시 멈추고 말았다. 이번에는 지난번보다는 격렬함이 덜했다. 머릿속이 빠르게 맑아지고 있었지만 너무 늦었다. 뭔가 지연시킬만한 것이 필요했다.
스트라이크의 손이 주머니에 부딪쳤다, 그 속에 손을 넣어 재빠르게 파이프를 밖으로 끄집어냈다. 담배가 아직 반이나 남아있었다. 그는 라이터를 꼭 쥐고 불을 붙인 다음 힘껏 들이마셨다. 현기증과 싸우면서 있는 힘을 다해 자극적인 향을 풍기는 엄청난 담배 연기를 날려보냈다. 손에 힘을 잃고 파이프를 떨구었다. 그는 몸을 웅크리고 기도하는 자세로, 빌고, 긴장하며너 기다렸다. 그는 실패한 것인가?
지이잉! 펑! 통했다! 스트라이크는 몸을 굽히고 가능한 작게 공처럼 웅크렸다. 금새 공기중에는 날카로운 흐느낌소리가 가득해졌다. 수백의 작은 폭죽 풍뎅이가 추위에 대비한 중장갑을 한 채로 구름 속에서 그들이 제일 좋아하는 향기의 근원을 찾아 돌진해왔다.
벌레 몇 마리는 스트라이크를 때릴 정도로 낮게 날면서 등을 스치고 지나갔고 붉은 멍자국을 남겼다. 그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동맹이 되어준 폭죽 풍뎅이가 일으킨 폭풍이 상황을 정리하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가 원주민에게 샷건을 연사하며 공격을 퍼부은 것과 흡사했다. 금성인의 대장은 가장 약한 부위인 목을 단단한 풍뎅이 몇에게 관통당해 음극선에 맞은 것처럼 쓰러졌다.
원주민들은 끔찍하고 가는 비명소리를 냈다. 그들은 몸을 웅크렸다. 있는 힘을 다해 몸을 휘둘러봤지만 소용없었다. 결국에는 그들은 다쳐서, 가지고 있던 무기조차 버리고 사방팔방으로 도망쳐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한동안 폭죽 풍뎅이는 뒤로 앞으로 쓸고 다니더니 결국에는 스트라이크가 파이프를 묻어버리는 바람에 더 이상 매혹적인 향이 나지 않자 사라져버렸다. 드디어 스트라이크는 일어서서 몸을 털고는 싱긋 웃었다. 이 순간은 그의 것이었다! 정복자 영웅이라도 되는 듯 걸어서 보기에도 분명한 참사가 벌어진 곳으로 향했다.
인부들은 아직 엎드려 있었다. 현명하게도 가스의 효력이 사라질 때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게리는 낡은 넝마조각처럼 나무에 기대서서 멍한 눈으로 그의 구원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스트라이크가 반중력반을 풀어주었을 때 그녀는 손가락을 떨고 있었다.
그녀는 바로 서려 했지만 무릎이 기대를 저버리는 바람에 무역업자의 품속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는 심각하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그럼, 젊은 아가씨 이 밤에 두 가지 교훈을 배운 것으로 믿겠소. 하나는 아무리 게리 칼라일이라도 항상 제식대로 밀고 나갈 수는 없다는 겁니다. 특히나 머리에 관한 일이라면 말이죠. 둘째로, 단순한 남자들이라도 말이요-비록 때때로 원치않는 희생을 자처할 지라도-때에 따라서는 꽤 유용할 수도 있다는 거죠.”
게리는 그녀의 자세를 확실하게 인식하자마자 벗어나려고 시도했지만 크게 열심히 하진 않았다. 스트라이크는 웃었다. 그녀가 새빨개져서 화내는 모습은 그를 다시금 웃게 만들었다.
“그저 혈액순환계에 혼란이 왔을 뿐이에요.” 그녀가 냉랭하게 설명했다.
“그걸 그렇게 부른다고요? 난 이쪽이 더 맘에 드는 데요. 더 보고 싶군요.” 스트라이크가 그녀에게 키스하자 게리의 혈액순환계는 완전히 맛이 가고 말았다.
머리의 나뭇가지와 그 거주자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오자, 밤은 다시 소란해졌다. 고개를 내밀고 졸고 있는 듯 한 콧소리로 물어온다.
성공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표본들을 포획하고 운반하기 무섭게 진기한 표본들이 등장했고, 방주의 수장고는 신속하게 채워지고 있었다.
스트라이크는 오직 그 걱정뿐이었다. 머리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야 할 시간이 다가 오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그녀의 얼굴은 분노로 가득해질 것이다. 그날이 다가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너무나 갑작스럽게 다가왔다. 여섯째 날 아침이었다.
“스트라이크 씨.” 그 젊은 여성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꽤 참아준 것 같네요. 머리를 찾아달라는 요구를 피하기만 하시는 군요. 하지만 우리가 여기 온 가장 큰 목적이 그겁니다. 우린 48시간 내로 떠나야 해요. 금성의 밤이 온다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힘들고 위험해지니까요. 이봐요, 꾸물거릴 때가 아닙니다.”
스트라이크가 그녀를 쳐다보았다. “내가 거절한다면?”
게리가 차갑게 미소 지었다. 당신네 회사는 여기에 발도 못 붙이게 될 겁니다. 아시다시피 당신들은 총력을 다해서 우리를 돕게 되어 있잖아요.”
무역업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어깨를 으쓱거렸다.
“좋아요. 그럼 잠깐 동안 나는…”
그의 마지막 말은 랜섬이 기묘한 기계장치를 들고 금속계단을 오르는 딸깍거리는 소리에 묻혀버렸다.
“아마도 이게 필요할 거야. 토미.” 그는 게리를 짜증난다는 듯 흘끗거리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래, 꼭 필요할 거야.” 스트라이크는 장비를 어깨에 매고 끈을 조였다.
“지금 그게 뭐죠?” 게리가 궁금해 한다. “머리를 찾는데 특수한 장비가 필요한가요? 도대체 뭐에 쓰는 장치죠?”
스트라이크가 흔쾌히 설명했다.
“이 장비의 전원부입니다. 진공관 발진자와 증폭기 그리고 진공관 증폭기와 인덕턴스 브리지로 연결된 수신장치로 구성됩니다. 헤드폰도 달렸지요.” 그걸 매고 있으면 학생 같아 보였다. 거기에 수색코일이 붙어있었다.
“이 브리지는 전원을 사인파로 바꿔주어, 저항과 유량조절의 균형을 유지해줍니다. 몸체 내부에 장착된 코일이 인위적인 자장을 발생시킵니다. 와상 전류가 발생되는 도체를 만나면 탐색 코일로 유도되는 량이 줄어듭니다. 브리지에 불균형이 생기게 되죠. 이러한 상황은 헤드폰을 통해서 알 수 있…”
“됐어요! 됐다구요!” 게리는 두 귀를 손으로 막았다. “나도 금속 탐지기 정도는 알아요. 전에 한번 봤으니까! 난 그저 당신이 그걸 왜 지금 가져가는지 알고 싶을 뿐이라고요.”
“아, 호신장비죠.”
“무엇으로부터 지킨다는 거죠?”
“원주민이요.”
게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원주민이라. 그 비늘달린 물고기 같이 생긴 얼굴을 하고 안개 속의 저 먼 곳을 어정거리며 돌아다니는 그거요? 어째서 그렇게 겁이 많은 자그마한 생물이 우리를 해친다는 거죠. 그건 불가능해요. 게다가 금속탐지기가 어떻게 그자들을 막을 수 있죠?”
“어째서냐면, 그들은 매우 교활해서 안개 속에 숨어 다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금속탐지기를 가지고 있으면 그들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 알 수가 있어요. 당신도 알겠지만, 이 지역의 모든 원주민들은 금니를 하고 있거든요!”
누군가 웃기 시작하자 게리는 얼굴을 붉혔다. “스트라이크 씨, 당신만 내킨다면 일을 진행시키기 위한 이성적인 계획을 말해주었으면 하네요. 재밌는 장난이었지만…”
“그건 장난이 아닙니다.” 스트라이크 울적한 기분을 느끼며 말했다. “그건 사실입니다. 머리가 처음으로 금성에 왔다간 이래로 원주민들은 대부분 금니를 해 넣었어요. 그들은 머리를 신이라 생각하고 있거든요. 따라서 여러 가지로 그를 흉내 내고 있죠.
그는 금니가 여러 개 있었는데 초창기 치과 기술의 유물이죠. 그래서 원주민들은 이를 지체 없이 갈아버리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순금을 이용해 보철물을 만들어 씌운 겁니다. 그대로 두기만 한다면 그들이 우릴 해치진 않을 겁니다. 칼라일 양.
“문제는 항상 동물 사냥꾼들이 머리를 잡겠다고 들쑤시고 다니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당신네들도 얼마 안 있으면 내 말을 이해하게 될 겁니다.” 그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제 준비 되었습니다.”
“제기랄! 수수께끼에 다들 골칫거리라고만 하면서 설명은 안 해주는 군요. 당신은 머리에게 손대면 안되는 이유를 에둘러 말했지만 그건 내겐 흥미를 더해줄 뿐이라고요. 나는 칼리스토의 라듐덩어리가 덮친다 해도 사냥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요!”
“좋아요.” 스트라이크는 갑갑한 듯 설득을 포기했다. “갑시다.” 그는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딘지 정확히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안개 속을 똑바로 뚫고 나갔다. 5분쯤 가더니 12인치 정도 되는 구멍이 잔뜩 뚫린 거대한 소철같은 나무 앞에 멈춰 섰다. 그게 적어도 50마리가 넘는 그 유명한 머리가 살고 있는 군락지였다.
“여깁니다.” 스트라이크가 체념한 듯 말했다. “유인원 머리입니다.”
게리는 스트라이크에게 화가 났던 것을 완전히 잊고 말았다. 눈앞에 보이는 생소한 생물의 군집에 압도된 나머지 밀려드는 행복감에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군집의 절반정도가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거대한 나무줄기를 타고 빙글 빙글 돌면서 위로 아래로 기어 다니고 있었다. 제 구멍에서 튀어 나왔다 들어갔다 하면서 잎줄기의 앞뒤를 따라 극도의 흥분상태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다른 것들은 조용히 앉아서 엄숙하고 무심한 태도로 관망하면서 이따금씩 질문이라도 하듯 입을 벌리고 서럽게 울었다.
“머리? 머리? 머리?”
그들에게 딱 맞는 이름이었다. 회갈색의 부드럽지만 숱이 적은 털이 달린 등을 가진 그 들은 고대 지구의 원숭이들과 흡사한 크기였다. 코가 거대하게 자라난 덕분에 코주부원숭이와 닮은 모습이었다.
그 벨쥬락의 매부리코만 봐도 그 이름의 유래를 알 수 있었다. 스탄호프의 대장인 시드니 머리는 태양계를 통털어 가장 크고 못생긴 코를 가진 걸로 유명했다.
유인원 머리의 군락에 있는 수백의 시드니 마리의 닮은꼴들은, 환상적인 모습으로 나무 위를 빙글 빙글 돌고 춤추면서 보는 사람의 눈을 현혹시키고 있었다.
“오오!” 게리는 웃다가 목이 멘 나머지 뺨에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냈다. “오, 그래도 이건 끝내주는데요! 누가 저들에게 이름을 붙인 거죠?”
스트라이크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머리 자신이 스스로 붙인 거죠. 그는 꽤 훌륭한 유머감각을 지녔거든요.”
“유머 감각이라! 오, 그거 참 엄청나군요!”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저 귀여운 털복숭이들 한 무리를 런던에 데려간다면 엄청날 거예요. 얼마나 대단할까!”
“아직 런던에 데려간 건 아닙니다.” 스트라이크는 그 점을 지적하고는 불안한 눈으로 탐지기의 계기판을 살피고 있었다.
“지금 날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게리 칼라일을 아직 모르는 겁니다.” 그녀는 다시 오만하고 고집 센 탐험대장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소철에 다가가서 가까이서 머리를 조사했다. 그들은 매우 온순했다. 가까이서 조사한 결과 세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첫째로 물건을 잡기엔 부적당한 짧은 꼬리의 존재였다. 그 끝에는 독침으로 보이는 것이 달려있었다. “저게 유일하고 연약한 방어수단이지요.” 스트라이크가 설명했다. “머리는 일생의 대부분을 나무위에서 지내면서 대추같은 열매를 먹고 살아요. 저 침도 벌침보다 독하진 않습니다.” 그는 울퉁불퉁한 팔을 빼서 전에 쏘인 자국을 보여주었다.
두 번째는 큰 갈색 눈을 보면 홀리게 된다는 것이다. 머리가 침입자를 눈도 깜빡이지 않고 응시하면 그는 최면에 걸린 듯 심장을 쥐어짜는 듯 한 슬픔을 느끼게 된다. “저것들을 보고 있으면 온 우주의 근심과 걱정을 다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배로우가 말했다. “저들을 집에서 끌어내려는 내가 기생충처럼 여겨진다고요!”
세 번째는 큰 나무 밑에 어울리지 않게 쌓여있는 쓰레기 더미에 대한 것이다. 싸구려 시계라든지, 잡동사니, 성냥, 어린이용 불꽃놀이, 자질구레한 것 들이다. “원주민의 공물입니다.” 스트라이크가 설명했다. “여기 바쳐야 한다는 법칙이 있습니다. 약초나 보석의 원석을 저런 것들과 교환해가죠.” 그가 쓰레기 더미를 가리켰다. “무엇이든 불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특별한 가치가 있지요 머리는 원주민들의 신입니다. 그것은 태초의 신, 시드니 마리와 닮았기 때문이지요.”
더 이상 웃는 사람은 없었다. 이제야 사냥꾼 무리도 한 마리 혹은 더 이상의 머리를 여기서 떼어내는 일이 금성에서는 신성모독에 해당하는 일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제야 ‘문제를 야기한다’는게 무슨 소린지 알겠군요.” 게리가 말했다. “하지만 다루기 벅찰만한 생물은 아니지요. 전에도 그랬지만 항상 문제없이 지나갔어요. 생포를 만류하는 이유가 단지 그 원주민들 때문이라면….”
“그게 다가 아닙니다.” 그러나 스트라이크는 더 이상 설명해주지 않았다.
“또 다른 수수께끼군요!” 게리는 코웃음을 치고는 나뭇가지 밑이 넓고 긴 그물을 설치하는 것을 감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방이 줄기에 명중하자 머리 예닐곱 마리가 놀라서 그물로 떨어졌다. 그들은 놀랄 만큼 민첩하게 공기 중으로 튀어 오르더니 안전한 나무위로 돌아가 버렸다. 그러나 촘촘한 그물에 걸린 한 마리는 잡히고 말았다. 마침내 그물은 신속하게 가방모양으로 접혀버렸다.
“잡았다!” 게리가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이거 참 쉽군요!”
“그렇죠. 하지만 아직 런던의 박물관 아니 우주선에도 돌아가지 못했어요.”
게리는 스트라이크를 멸시하는 눈으로 보고 나서 그물 속을 지그시 들여다보았다. 머리는 조용히 누워서 그 놀라서 거대해진 둥근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 머리, 머리?”
게리는 또 웃고 말았다. 위대한 게리의 환상적인 축소판은 스스로를 정직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다들 방주로 돌아가자고.” 그녀가 외쳤다. “이 꼬마 귀염둥이와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야!”
탐사대는 왔던 길을 되짚어 가기 시작하자마자 큰 문제가 발생했다. 머리를 고향인 나무에서 10야드 정도 떨어진 곳으로 운반하자 격렬한 발작을 일으키고 말았다. 그것은 날카로운 비명을 두세 번 지르자 머리의 나무에서 소름끼치는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응답했다.
그 작은 포로는 거친 행동으로 분노를 폭발시켰고, 탈출하려고 믿기 힘들 만큼의 분노를 뿜어내며 버둥거렸다. 몸을 배배꼬고 발톱을 휘두르고 침을 뱉고 물어뜯었다. 운반을 맡은 이들은 할 수 없이 그것을 집에서 먼 곳으로 데려가는 것을 포기했다. 갈수록 미쳐 날 뛰는 게 확실했기 때문이다. 공포로 정신이 나가서 가시 돋친 꼬리로 스스로를 계속해서 찔러대고 있었다.
계속해서 심장을 찢는 듯 한 절망적인 소리를 내더니, 결국에는 입에서 옅은 담황색의 피를 쏟아내면서 광기의 폭발은 끝이 났다.
전 탐사대가 멈춰서 그 작은 생물에게 일어난 소름끼치는 일을 지켜보았다. 게리 칼라일은 껍질이라도 깨진 모습이었다. 그녀는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녀는 그물을 억지로 열고 굳어버린 작은 몸을 조사했다.
“죽었어요.” 그녀는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소리 내어 말했다. “내출혈을 일으켰어요. 혈관이 터져버린 거죠.”
스트라이크가 우울한 수확물 때문에 당황한 것으로 보이는 그녀에게 답했다.
“광장공포증입니다. 이 행성의 머리들은 대부분 광장공포증 환자입니다. 그들은 일생을 그들이 태어난 특정한 나무 주변에서 보내거든요. 몇 야드만 떨어진 곳으로 데려가도 신경계가 고장나 경련을 일으키고는 죽어버린답니다.”
그는 그물 속의 사체를 가리켰다. “말해 줬어야 했지만 믿지 않았겠지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고 싶어 할 테니까.”
게리는 예상치 않게 찬물 세례를 받은 털 복숭이 개라도 된 마냥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내가 절대로 산채로 데려가지 못할 거라는 게 당신이 한 말의 의미인가요?”
“대충 그렇지요.”
“대충! 당신의 말에 뭔가 다른 이상한 점이라도 있는 거라….”
스트라이크는 음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오래전부터 바랐던 것이니까요. 어떻게 행동할지는 알고 있어요. 다른 것을 잡겠죠. 그 녀석의 꼬리를 잘라서 스스로를 찌르지 못하게 할 겁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꽁꽁 묶어서 손과 발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겠죠. 그 녀석이 발버둥치다 죽어가는 것을 어떻게든 막으려고요. 그렇죠?”
“맞아요!” 게리가 결정했다.
“로저 여기 남아서 싱패할 때까지 시도해봐.”
“그리고요?”
무역업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당신도 실패할 거요. 하지만 날 멈출 수는….”
“날 말리지 말아요. 스트라이크 씨. 행여나 그런 생각도 말아요.”
그녀는 크랜즈와 함께 자켓 두 개를 엮어서 임시 변통으로 머리의 구속구를 만들었다. 동시에 다른 사냥꾼들은 넓게 퍼져서 다시 그물을 펴고 총으로 기묘한 머리들로 가득한 가지를 맞춰 떨어뜨렸다. 건장한 두 사람이 재빨리 달려들어서 단단히 묶은 다음 그것을 들고 동료들의 곁을 떠났다. 엄청난 투덜거림과 쉿쉿 거리는 소리, 울음소리를 내는 생존자들의 군락을 뒤로하고서.
스트라이크와 랜섬은 금성의 낮이 지속되는 동안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좋지 못한 기후 속에서 움직이는 것은 어지간한 체력을 지닌 스트라이크라 해도 쉽게 지치는 일이었다. 에너지가 유별나게 고갈되는 것을 느꼈다.
어느 샌가 빛이 희미해지기 시작하자. 랜섬이 제안했다. “내 생각에 아크가 곧 떠나야 할 것 같다. 지금이 이륙하기 제일 좋은 시간이야. 합이거든.”
스트라이크는 머리를 저었다.
“무리야. 저 거친 꼬마 칼라일께서 우주선 밖에서 엄청나게 쓰디쓴 교훈을 배우는 중이거든. 금방 떠나려 들지 않을 걸.” 그가 예언했다. “기다리면서 지켜보자고.”
하지만 스스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자신이 그 끔찍한 여자를 절실하게 다시 보고 싶어 한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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